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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ㆍ냉천구역 조합원, 시공사에 뿔났다: 2009.12.23 15:23 입력 | 2009.12.30 15:27 수정

충정로ㆍ냉천구역 조합원, 시공사에 뿔났다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ㆍ냉천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이하 본 정비사업)장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이곳은 지난 9~10월, 전(前) 조합장이 정비업체 등과 짜고 수십억 원대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관할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입주를 마친 상태에서도 여전히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시공사가 일반분양 수익금을 가져가기 위해 계약서를 위ㆍ변조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계약서를 근거로 시공사 측이 공사비를 마음대로 받아 감으로써 조합 측에 막대한 부담을 안겼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본 정비사업장의 시공사인 D건설은 입주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조합 측에 추가 공사비 121억 원을 요구했다. D건설 측은 청구 사유로 암반 공사와 특화 조경 등에 관한 비용이라 설명했다. 입주가 코앞인 상황에서 추가 부담금이 발생한 데 대해 조합원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합원들은 추가 공사비가 나오게 된 배경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D건설과 전 조합장인 한 모 씨의 비리 혐의가 불거졌다. 그리고 추가 공사비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지난해 문제시됐던 설계 변경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해 7월, 당시 조합은 주민총회에서 설계 변경안을 상정ㆍ의결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조합 대의원회의에 위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총회 의사록에 의하면 당시 설계 변경안은 ▲분양 아파트 지하 주차장 면적 변경 ▲분양 아파트 복리시설 지상층 면적 변경 ▲임대 아파트 경비실 및 각종 복도 면적 변경 ▲근린생활시설 변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시공사인 D건설이 제안한 것이며, 이 안건은 구체적인 공사비가 제시되지 않은 채 의결됐다.
이때까지는 별반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난 6월, 서대문구청이 “지난해 7월 총회에서 결의된 설계 변경(안)이 주무 부서에서 인ㆍ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니 조합원들로부터 설계 변경 동의서를 징구한 뒤 총회 의결을 거쳐야 ‘준공검사(竣工檢査)’를 내주겠다”고 통보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D건설과 당시 조합장 한 씨는 일부 조합원들로부터 설계 변경 동의서를 받은 뒤 설계 변경안을 상정ㆍ처리하기 위해 지난 8월에 임시총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설계 변경안은 조합원들의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됐다. 이후 동의서 징구 및 총회 개최 과정에서 전 조합장 등이 사용한 비용이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전 집행부는 동의서 징구를 위해 OS를 동원해 한 달간 1억 6500만 원을 지급했으며, 8월 총회 당시에도 용역 직원 30명을 고용해 1500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총회 전까지 조합원 대부분은 설계 변경안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면서 “전 조합 측이 무슨 이유로 변경안을 총회에서 의결하려 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안건 처리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2억 원에 가까운 돈이 낭비됐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前조합장ㆍ시공사, 계약서 변조…‘기성률’ 누락
공사비 맘대로 수령, 일반분양 수익 챙기려고?

 
최근에는 전 조합 집행부와 시공사인 D건설이 체결한 계약서의 일부 내용이 달라졌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실제로 본보가 입수한 2개의 계약서(사진 참조)를 대조한 결과, 특정 조항의 내용이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지난 2005년 10월에 작성된 계약서(사진1)의 제40조 제5항은 “‘갑(조합)’의 각종 수입금은 전체 공사 금액에 달할 때까지 ‘기성률(계약서상에는 ‘기성율’로 표기됨)’에 따라 ‘을(시공사 D건설)’의 공사비로 우선 충당하고 잔여금은 각종 연체이자, 대여 이자, 대여 원금의 순으로 변제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그해 12월에 작성된 계약서(사진2)에는 해당 조항이 “‘갑’의 각종 수입금은 전체 공사 금액에 달할 때까지 ‘을’의 공사비로 우선 충당하고 잔여금은 각종 연체이자, 대여 이자, 대여 원금의 순으로 변제한다”로 바뀌어 있다. ‘기성률’이란 단어가 삭제된 것이다.
기성률이란 공사 계약금 대비 ‘공사 진척도(공정률)’에 따라 받는 금액의 백분율이다. 이 기성률에 따라 공사비를 지급하게 되면 조합원 부담금, 일반분양 수익금, 부대 복리시설 수익금 등이 들어올 때, 공정률에 따라 공사비를 내고 나머지 잔여금으로 각종 비용을 충당하면 된다.
반면에 ‘전체 공사 금액에 달할 때까지’라는 문구에 따르면 조합 측은 수익금을 모두 시공사 측에 지급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조합은 차입금에 대한 원금ㆍ이자 지급이 밀리게 되고 그에 따른 추가 비용도 부담해야 된다. 이에 대해 현(現) 조합 임원인 김 모 씨는 “계약서상의 조항이 바뀌면서 (차입한) 공사비에 대한 이자비용이 당초 18억 6000만 원에서 현재 약 58억 원으로 늘어난 상태”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이에 관한 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 조합장과 시공사 측은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지난 2005년 임시총회에서 시공사 측이 느닷없이 ‘미분양’ 운운하며 계약서 변경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이것이 ‘계약서상에서 ‘기성률’을 빼기 위한 연막작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이 ‘기성률’이 계약서에서 빠짐으로 해서 시공사 측이 공사비를 원할 때 마음대로 받아 갈 수 있게 됐고, 실제로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대부분의 공사비가 D건설로 지급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합의 임원인 김 모 씨는 “전 집행부 측이 이미 지난 4월까지 약 1220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총 공사비가 약 1300억 원인 점(추가 공사비 121억 원 포함 시), 여기에 추가 공사비 87억 원이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완공 4개월 전에 모든 공사비를 받아간 셈”이라면서 “‘기성률’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결국 계약서상에서 ‘기성률’이 누락됐다는 것은 크게 2가지 의미에서 조합에 피해를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차입금에 대한 이자비용 증가이고, 다른 하나는 시공사 측이 맘대로 완공도 되기 전에 모든 공사비를 받아 감에 따라 조합 측이 예상할 수 있는 이자수익이 사라진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올 4월까지 공정률이 80%이었다고 가정하면 원래 계약서상으로 시공사는 그에 해당하는 금액(1300억 원×0.8=1040억 원)만 받아 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시공사는 1220억 원을 받아 갔다. 조합으로서는 180억 원을 미리 지급한 셈. 금리를 5%로 계산해도 4월부터 8월 말까지 5개월 간 예상되는 이자수익은 약 3억 7000만 원 정도로 추산된다. 물론 지난 4월 당시의 공정률이 이보다 더 높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총 공사비 약 1300억 원 가운데 추가 공사비 121억 원을 빼면 본래 공사비가 약 1180억 원이고, 4월까지 지급된 돈이 1220억 원이므로 본 공사비는 이미 그 시점에 전부 지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조합원은 “‘기성률’이란 단어가 삭제돼 조합원들이 피해를 입게 된 것이 제일 큰 문제이긴 하나 조합원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유발하는 내용에 대해 총회 의결도 없이 조합장(한 씨)이 임의로 처리한 것도 문제”라며 “계약서 위ㆍ변조는 명백한 불법이며, 이러한 위법 행위에는 시공사도 가담했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조합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해 전 조합장과 시공사 간의 ‘검은 거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