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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지정前 추진위 설립유효…부산고법 첫 판결: 2010.04.27 14:01 입력 | 2010.04.28 00:04 수정

정비구역지정 전(前)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조합 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설립됐더라도 기본계획이 이미 수립된 지역이라면 추진위 설립이 유효하다는 판결이 처음 나왔다.
 
부산고등법원(이하 부산고법)은 이 법원 행정 제1부가 지난 16일 배 모씨 등이 사직1구역 주택 재개발 조합을 승인해준 동래구청장을 상대로 낸 조합설립 무효소송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사직1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 2008년 3월 토지등소유자 386명 중 305명 동의를 받아 조합설립인가를 받았으나 배 씨 등 4명은 동의서에 건축물 철거 등 세부 비용 분담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조합 설립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조합 설립 무효 판결을 내렸다. 동래구청장은 항소했고 원고 측은 1심 소송 시 제기했던 비용 분담 문제에 정비구역지정 전 추진위 설립도 문제 삼았다.
 
배 씨 등은 “동래구가 지난 2005년 12월 추진위를 승인했지만 정비구역지정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07년 6월에 이뤄졌다”며 “추진위 설립이 정비구역지정에 앞서 추진위 설립 자체가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지난해 말 있었던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제기된 소송이다. 지난해 10월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 광명마을 주택 재개발 구역 내 주민들이 “정비구역지정 전 설립된 추진위는 무효”라며 원주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추진위를 구성하려면 구역지정이 이뤄져 토지등소유자의 범위가 먼저 확정돼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전국 재개발ㆍ재건축 조합 100여 곳이 같은 이유로 조합ㆍ추진위 설립 무효 소송에 휘말리면서 시장 혼란은 극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신당8구역과 올 2월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에서 설립 무효 판결이 떨어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번에 부산고법이 정비구역지정 전 추진위 설립 무효에 대한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시장 혼란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비구역지정 전이라도 기본계획이 고시됐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위 설립 시기를 자체 조례에 의거해 판단ㆍ승인해줬다면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옛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상에는 추진위 설립 시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ㆍ국토부) 업무처리기준에도 기본계획이 수립돼 있으면 추진위 승인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며 “기본계획 수립 시 정비구역의 개략적 범위를 포함하고 있어 단지 정비구역지정 전 추진위 승인이 이뤄졌다는 것만으로 명백한 하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업계 관계자 S씨는 “원주시 소송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아예 정비예정구역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내려진 설립 무효 판결”로 극히 예외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재개발ㆍ재건축 추진 구역들이 정비구역지정 전에 추진위를 만든 것은 국토부가 지난 2003년 7월 재개발ㆍ재건축 관계 법령을 통합한 도시정비법을 시행하면서 지침으로 추진위부터 만들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지침에 근거해 도시정비법 실시 이후 올해 2월까지 추진위 승인을 받은 구역이 서울에만 180여 곳에 달한다.
 
이번 판결 내용이 알려지자 비슷한 사례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던 재개발ㆍ재건축 조합과 추진위 측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울시는 인구 50만 명 이상 대도시로 사직1구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재개발 구역이 기본계획 수립 이후 추진위가 설립됐기 때문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재개발 추진위 관계자는 “이제껏 원주시 사례를 들며 추진위를 압박하던 주민들에게 ‘기본계획상 구역(면적)을 개략적으로 결정하고 있는 구역의 경우 추진위 설립이 유효하다’며 설득해왔다”면서 “이번 판례가 우리의 생각에 힘을 보태주고 있는 만큼 향후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