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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 주공, 조합 설립도 못했는데 ‘수렁’에 빠졌다: 2009.11.04 15:00 입력 | 2009.11.04 22:03 수정

둔촌 주공, 조합 설립도 못했는데 ‘수렁’에 빠졌다

 
조합 설립을 눈앞에 두고 토지등소유자 간 갈등으로 사업이 표류되고 있는 곳이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로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의 둔촌주공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이하 본 정비사업)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에 본 정비사업의 이해관계자들을 찾아 본 정비사업이 안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동일 사안을 놓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 갈등을 겪고 있는지 등을 보다 자세히 다루어 보았다.
 
 


일부 주민, “사업성 예측 안 되는 부실 동의서”
전문가, “개별 분담금, 추진위 단계서 파악 불가”

 
“어느 정도 사업성을 예측할 수 있어야 재건축(의 추진 여부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추진위원장(조합설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도장이나 찍어라’는 식으로 무리하게 이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취재 차 만난 둔촌주공 아파트 주민 홍 모 씨의 푸념이다. 그는 본 정비사업의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동시에 그동안 갖고 있던 의혹을 제기하는 등 1시간에 가까운 인터뷰 내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홍 씨는 인근 가락시영 아파트 사례를 예로 들면서 “(가락시영의) 재건축 결의와 사업시행 동의서를 보면 조합원들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 추진위(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조합 설립을 위해 징구하고 있는 동의서는 너무 추상적”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가람법률사무소의 전영상 대표 변호사는 “추진위 단계에서 구체적인 분담 금액은 절대로 알 수 없다”면서 “다만 그 산정 기준은 제시할 수 있는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시행 규칙에 편입된 동의서상의 ‘비례율’이 그러하다. 따라서 추진위로서는 동의서와는 별도로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26조 제2항의 사항을 기재한 책자 등을 만들어 토지등소유자들에게 설명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업의 개략적인 내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 지며 실제로 다수의 사업장에서는 이와 같이 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홍 씨가 내민 조합 설립 동의서 등에는 본 정비사업의 총 사업비가 무려 4조 1200억 원이 넘는다는 것만 나와 있을 뿐이었다. 전 변호사를 비롯한 업계 전문가들이 말했던 ‘책자 등을 만들어 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이 사업비를 문제 삼는 데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C씨는 “세대수가 엇비슷한 가락시영의 경우, 조합 설립 후 수년이 지난 상황에서 ‘사업비가 3조 원이 넘었다’며 분쟁이 생겼다”면서 “사업 구역 및 건립 예정 세대수, 기존 아파트 면적 등에서 차이가 나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조합도 설립되기 전에 사업비가 4조 원을 넘는다는 것은 충분히 문제 제기가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진위 관계자 엄 모 씨는 “가락시영과 우리는 세대수라든지 기존 주택 평수가 달라 그곳보다 사업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 “그곳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데, 이를 놓고 ‘사업비가 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외려 묻고 싶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로 본 정비사업은 강동구 둔촌동 170-1번지 일대 62만여 ㎡에 9090가구를 건립하는 것을 골자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둔촌주공 아파트 단지의 세대수는 5930가구. 기존 아파트 면적 역시 10평(1평=3.3㎡)대인 가락시영 아파트 단지(6600가구를 8106세대로 재건축 예정)에 비해 20~30평대가 많아 전반적으로 사업 규모가 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둔촌주공과 가락시영을 단순 비교해 ‘사업비의 많고 적음’을 논하는 데 대해서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업비 산출 근거도 모르는데 도장만 찍어라?
추진위, “현 단계서 논하기엔 무리, 문제없다”

 
홍 씨 등은 단지 사업비가 많다고 꼬투리를 잡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사업비(약 4조 원)가 어떻게 산출된 것인지, 그에 따른 개략적인 추가 부담금은 얼마나 될지 등에 대해 해당 주민들에게 어떠한 정보 제공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 홍 씨는 “추진위원장 등과 여러 차례 통화를 했고, 추진위 관계자들에게도 이 부분에 대해 보다 명확히 설명해 달라고 했으나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추진위 관계자 엄 모 씨는 “사업비는 ‘고점’이던 지난 2007년을 기준으로 해 개략적으로 산출한 것”이라면서 “최근 들어 고점 대비 가격을 회복한 데다 그간의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이를 문제 삼기엔 무리”라고 말했다. 엄 씨는 또 “이런 내용을 이미 소식지를 통해 주민들에게 공고했다”면서 “게다가 사업비라는 것이 추진 과정에서 변동될 수 있는 것이고, 보다 구체적인 부담금 등은 사업시행인가 때 당연히 조합원들에게 동의를 구할 것”이라며 별로 문제 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홍 씨는 “아무 것도 모르는 주민들에게 조합 설립에 필요하다며 ‘도장만 찍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해 (자신조차) 그냥 찍어 줬다”며 “이후 사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추진위 관계자는 “우리가 강제로 도장을 찍으라고 한 적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서 “현 단계에서 논하기엔 무리가 있는 문제를 가지고 꼬투리를 잡으면서 사업을 지연시키려는 이유가 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 ‘비용 부담은 본질, 미정 시 무효’ 대법원 판례 근거로

 
홍 씨 등이 요구하는 사업비 산출 근거 및 구체적인 부담금 내역 등에 대해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지난해 5월 15일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재판부는 “조합 설립 동의서에 ‘비용’ 등 재건축 사업과 관련된 본질적 내용이 없을 경우, 그 동의서에 의거해 결의한 것은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 판결문에는 “재건축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은 토지등소유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재건축에 참가할 것인지, 아니면 시가에 의해 토지 등을 매도하고 재건축에 참가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기준”이라면서 “이는 재건축 결의 내용 중 가장 본질적인 부분으로, 이를 정하지 아니한 재건축 결의는 무효”라고 판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C씨 등은 “지금까지 들은 내용만 보면 본 정비사업장의 상황은 대법원 판례와 비슷하다. 이를 근거로 일부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구체적인 상황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섣부른 예단은 무리”라고 말했다. 다만 재건축 결의에 대해 본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본 사건에 관심을 갖고 예의 주시할 필요는 있다는 게 자문에 응한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법원, “2008년 주민총회 결의 무효”
추진위에겐 독약, 원고 측에겐 보약

 
지난 9월 25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 제11부는 일부 주민들이 본 정비사업의 추진위를 상대로 제기했던 ‘주민총회 결의 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법원의 판결에 따라 본 정비사업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지난 2007년 8월께부터 조합 설립 동의서를 징구했던 추진위의 경우 그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추진력을 잃게 된 반면, 지금까지 이를 근거로 추진위의 사업 진행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던 일부 주민들에게는 힘이 실리게 됐기 때문이다.
해당 추진위는 지난 2002년 12월, 총 구분소유자 6215명 중 3990명이 참석한 조합창립총회에서 ‘재건축 결의 및 사업시행 동의의 건’을 참석자 전원 찬성으로 결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추진위는 이듬해 10월에 강동구청장으로부터 추진위 설립을 승인받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 8일, 총 구분소유자 6239명 가운데 3775명이 참석한 주민총회에서 제2호 안건인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조합 설립 결의 및 사업계획 동의의 건’은 3371명의 찬성으로, 제3호 안건인 ‘조합 정관(안) 및 조합 운영 규정(안) 제정의 건’은 3319명의 찬성으로 각각 의결됐다.
이에 원고들은 “지난 2002년 12월 추진위가 총회를 개최해 재건축 결의를 마쳤고, 제2호 안건은 종전 재건축 결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위는 제2호 안건을 결의함에 있어 관계 법령이 정한 특별 결의를 거치지 않은 데다 그 내용 역시 지극히 추상적이므로 무효”라 주장했다.
그러자 추진위는 “2002년 12월 유효한 재건축 결의를 한 바 없고, 제2호 안건은 조합 설립을 위한 사항이므로 운영 규정에 의거해 일반 결의에 따라 구분소유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었으므로 유효”라고 반박했다.
법원은 “추진위가 지난 2002년 12월에 열린 총회에서 ‘재건축 결의 및 사업시행 동의의 건’을 결의한 사실은 인정되나, 이를 위해서는 관계 법령이 정한 의사ㆍ의결정족수를 충족시켜야 된다”면서 “하지만 위 결의는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으므로 이 결의를 전제로 한 원고들의 주장은 살필 이유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제2호 안건의 경우에는 그 제안 사유가 원활한 재건축 사업 추진을 위한 총회 결의를 얻고자 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를 재건축 결의에 관한 안건임을 인정했다.
또한 제3호 안건에 대해서는 조합 정관의 제정 및 시행에 대한 사항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해당 추진위가 조합 설립을 위한 조합 정관 제정에 대한 결의라고 봐야 하며, 이것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도시정비법 제17조 제1항, 시행령 제28조 등)에 의해 인감도장을 사용한 서면결의 및 인감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관계 법령이 정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은 제3호 안건에 관한 결의는 효력이 사라졌다.
이에 대해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 P씨는 “현 추진위 구성원들은 자진 사퇴하는 게 정상”이라며 “이대론 사업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S씨는 “추진위가 판결에 반발하고 있는 걸 보니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조직이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하루빨리 새로운 추진위를 구성하는 게 (정비사업 추진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추진위 관계자 엄 모 씨는 “우리는 대법원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이미 치유가 됐다고 보고 있다”면서 “현재 항소를 한 상태인데, 이 역시 항소를 하지 않으면 문제를 인정하는 게 되고 그것이 자칫 사업에 차질을 빚을까 염려돼 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충분한 설명 없이 동의서 재촉한 게 화근
일부 주민, ‘조합 설립 중단 요청’ 민원 내

 
추진위가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예비 조합원들로부터 조합 설립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정비사업의 추진위는 예비 조합원들에게 조합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주지 않은 채, “동의서를 내지 않으면 조합원 자격이 박탈된다”며 인감증명 첨부만을 강조했다는 게 문제를 제기한 일부 주민들의 주장이다.
결국 본 사건은 재건축 사업에 대해 비전문가인 주민들이 조합 설립 절차 등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조합 설립을 위한 업무 일체를 위임받은 추진위가 추진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재건축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면서 조합 설립 동의서에 서명ㆍ날인을 재촉함에 따라 갈등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의 판결로 힘을 얻은 홍 씨는 지난달 12일 관할 구청인 강동구청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공관리제도 회피를 위한 불법 무효 재건축 조합 설립 중단 요청’에 대한 것으로, 본 정비사업의 추진위가 사업비 산정 기준 등이 기재되지 않은 동의서를 ‘조합 설립에 필요하다’면서 징구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홍 씨와의 인터뷰 당시(10월 22일)에는 그가 제기했던 민원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처리 기한이 지난달 19일로 돼 있었으나 3일이나 지난 상태에서도 ‘처리 중’이란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강동구청 도시관리국 재건축과 관계자는 “민원인이 민원을 철회했다”면서 “철회했어도 민원은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10월 27일)까지 처리해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 씨에게 알아본 결과, 구청 담당자가 철회했다던 민원은 그가 동일한 내용으로 법무부에 접수했던 것으로, 아직까지 관할 구청에 접수했던 민원에 대한 답변은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추진위, 구역 내 상가 사업에서 제외 결정
집행부 핵심이 상가 소유주, 그런데 왜?
전문가들 “이해하기 어렵다” 한목소리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 가운데 본 정비사업장에서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뇌관’이 하나 존재한다. 사업 구역 내 상가의 동의율이 저조한 점과 그에 얽힌 각종 의혹들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추진위가 지난달 20일 열린 추진위원회의에서 사업 구역 내 상가를 사업 구역에서 제척하기로 결의한 것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 커졌다.
하지만 이는 여느 사업장과는 달리 다소 생소한 풍경이다. 보통 정비사업 구역 내 상가는 영업 손실에 따른 보상비 등을 높게 받으려는 상가 소유주들과 이를 낮추려는 사업시행자 간 갈등이 빈번한 곳이다. 더욱이 상가 소유자 중 추진위 혹은 조합 집행부가 포함된 경우엔 그 분쟁 양상이 심화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경우에 보통 사업시행자는 보상을 통한 매입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따라서 ‘상가 제척’은 극단적인 해결 방안에 속한다. 더욱이 이는 해당 상가가 아파트 단지 외곽 혹은 맹지에 있을 때만 가능한 수단이다.
그런데 본 정비사업장에서는 상가 자체가 이른바 노른자위 땅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몇몇 추진위 집행부가 상가 내 점포 소유주인 상황에서도 추진위에 의해 자발적으로 제척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추진위 관계자는 “2009년 8월 말 기준으로 상가 동의율은 32.7%에 불과하다”면서 “당초 빠른 시일 내에 이를 충족시켜 금년 안에 조합설립인가까지 마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상가 제척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률 전문가 S씨는 “도시정비법상 토지 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도 본 정비사업장의 경우에는 상가 제척이 어려울 듯하다”면서 “상가 소유자들이 쉽게 동조할 리 없는 데다 설령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건축위원회(이하 건축위) 심의에서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제41조 제2항은 토지 분할 대상이 되는 건축물의 소유자와 협의해야 된다고 돼 있으며, 동조 제3항은 협의가 성립되지 않은 경우에는 법원에 토지 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동조 제4항은 ‘제3항의 규정에 의해 토지 분할이 청구된 경우 시장ㆍ군수는 분할될 토지 및 그 위의 건축물이 다음 각 호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토지 분할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건축위 심의를 거쳐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당해 토지 및 건축물과 관련된 토지등소유자의 수가 전체의 10분의 1 이하일 것, ▲분할돼 나가는 토지 위의 건축물이 분할선상에 위치하지 아니할 것, ▲그밖에 사업시행인가를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요건에 해당할 것 등이 이 조항의 효력 범위에 있다.


 
 
특정 시공사 선정 위한 물밑 작업?
공공관리자제도 적용 회피코자?

 
하지만 추진위가 제척시키려는 상가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는 게 취재에 응한 주민 대다수의 반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위가 상가 제척을 결의해 조합 설립을 강행하는 것을 두고 “특정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본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 추진위원장 최 모 씨를 비롯해 부위원장 조 모 씨 등이 아파트 이외에도 상가 내 점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재건축 사업 시행으로 인해 상가 영업이 중단될 경우, 영업 손실에 따른 보상비 등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보상비를 높게 받으려는 상가 소유주와 이를 낮추려는 사업시행자 간 갈등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몇몇 추진위 핵심 구성원들이 상가 소유주인 상황에서 상가를 자발적으로 사업 구역에서 제척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말들이 많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숱한 정비사업을 다뤄 봤지만 이와 같은 경우는 드문 일”라면서 “상가 제척 사유가 추진위가 밝힌 신속한 조합 설립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는 이상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주민인 홍 씨 등은 “올 연말까지 추진위 ‘딱지’를 떼어야 ‘공공관리자제도’의 적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뒤라야 시공사 선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다수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조합 설립을 서두르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추진위 관계자 엄 모 씨는 “지난해 11월 총회에서 ‘추진위원회 및 대의원회 위임의 건’을 상정ㆍ의결했고, 의결된 안건 중에는 ‘복리 시설 분리 추진의 건’도 포함됐다”면서 “전제조건으로 ‘조합 설립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로 정했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는 상가를 사업에서 배제하려는 추진위의 행위에는 하자가 없다”고 밝혔다.
법률 전문가 S씨 역시 “공공관리자제도의 도입 취지가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해 사업 초기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함인 만큼, 일부 주민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추진위가 무리하게 사업을 이끌고 있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심증만 가지고 판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비업체 용역비(3.3㎡당)가 5천 원…자선사업 하나?
수억 원 빌려준 T사…어디서 그런 여력 생겼나?
건설사 관여 의혹 등 확인되지 않은 설만 난무

 
한편 본 정비사업장에서 정비업체에 얽힌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재 이곳에 들어와 있는 업체는 T사(社). 이 업체는 지난 2004년 3월에 아곳의 협력 업체로 선정됐다.
업체 선정을 위한 추진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T사는 본 정비사업의 추진위가 정한 예가(預價)를 수용키로 했고, 그에 따라 최종적으로 정해진 정비업체 용역비는 3.3㎡당 5000원으로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러한 용역비는 업계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는 수준으로, 보통 3.3㎡당 1~3만 원대에서 비용이 형성되는 점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설계업체의 경우에는 추진위 단계에서 일거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3.3㎡당) 용역비를 아주 낮게 책정하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비업체의 경우에는 업무량 등이 그보다 많기 때문에 3.3㎡당 5000원에 계약을 했다면 (해당 정비업체가) 뭔가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워낙 사업 구역 면적이 넓기 때문에 전체 사업비를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낮은 것도 아닐 순 있다”며 다소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이에 추진위 관계자 엄 모 씨는 “우리가 제시했던 예가를 받아들인 건 정비업체”라면서 “평(=3.3㎡)당 용역비를 1만 5000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를 5000원에 계약했다면 사업 면적을 따져 봐도 대략 50억 원 이상 비용을 절감한 것이므로 우리로서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정 당시 책정된 용역비 때문에 이면 계약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T사와 추진위의 관계는 ‘돈’이 얽히면서 점점 의혹을 더해 가고 있다. 지난 2005년 9월, 추진위는 추진위원회의를 열고 정비업체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계획에 대한 안건을 상정해 결의했다. 이에 따라 추진위는 그해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총 6억 5천여만 원을 차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지난 2006년 9월 차입한 정밀안전진단에 필요한 비용 3억 6천여만 원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는 작년 상반기까지의 현황이고, 이로부터 1년 이상 경과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홍 씨 등의 주장대로 10억 원에 가까운 돈이 T사로부터 차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혹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된다. 홍 씨 등은 “정비업체가 도대체 무슨 돈이 있어 일개 추진위에 10억 원 가까이 빌려 주겠는가”라며 “이 때문에 정비업체 뒤에 우리 재건축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특정 건설사가 있다는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정비업계 수위를 달리는 몇몇 업체들조차 특정 추진위에게 수억 원씩 빌려줄 정도로 자금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서 “중소업체에 속하는 T사가 어디서 그 정도의 자금을 조달했는지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홍 씨, “추진위-감평업체 간 계약서에 계약 기간 없어”
감평사, “명시할 필요 없어 법적으로 하자 없어”

 
한편 감정평가(이하 감평)업체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본 정비사업의 감평업체로 선정된 업체는 업계 수위를 다투는 S사(社), 그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H사(社) 등 4곳이다. 이들은 지난 2006년 8월 추진위와 계약을 맺은 뒤 본격적으로 본 정비사업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홍 씨는 지난달 26일, 강동구청장에게 ‘추진위와 이들 감평업체 간 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빠졌다며 이를 시정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본보가 입수한 추진위와 감평업체 간 계약서(사본)에는 계약 기간이 기재돼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자문에 응한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의 설덕진 감정평가사는 “‘감평’은 관리처분계획 수립 및 과표 산정을 위한 자산의 평가를 주된 업무로 한다”면서 “이런 업무는 추진위 단계에서 확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계약서에 ‘기간’이 없는 것이 법적으로 하자가 되진 않는다”고 조언했다.


 
 
추진위원장의 연봉 “과하다” vs “아니다” 
영수증 없이 쓰는 月150만 원 판공비는 문제

 
일각에서는 추진위원장의 연봉이 과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 씨 등은 “추진위 단계에서 위원장의 연봉이 6~7천만 원에 달한다”면서 “추진위 단계에서 그렇게 받으면, 조합이 설립된 후엔 도대체 얼마를 받으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곤두세웠다.
하지만 추진위 측에 확인 결과, 현재 최 위원장이 받는 월급은 300만 원이었다. 이를 놓고 과도한 수준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행상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과하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추진위원장의 나이와 추진위 업무를 보는 동안 다른 소득을 내기 힘든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적어도 추진위원장에 걸맞은 대우는 해 줘야 한다는 것.
그런데 조합설립인가 뒤 예상한 조합 인건비에 대해서는 관행상 다소 과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개최됐던 총회 책자에 따르면, 조합장의 월급이 450만 원에 상여금과 퇴직금 등을 합해 총 7650만 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조합 설립 이후 조합장을 포함한 직원 5명의 총 인건비가 1년에 2억 원이 넘는 점 역시 본보가 다뤘던 대다수 사업장과 비교할 때 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서는 여느 정비사업장과 비교해도 과도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었다.
더 큰 문제는 추진위원장이 한 달에 150만 원가량의 돈을 영수증도 없이 판공비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추진위 관계자는 “안전진단을 받기 전에 ‘무보수’로 일할 때부터 그렇게 했던 것”이라면서 “현재 추진위 단계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어 (관행처럼) 그렇게 하고 있으나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합이 설립되면 관계 법령과 조합 운영 규정 등에 의거해 처리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비판을 일축했다.
하지만 전영상 변호사(한가람법률사무소)는 “모든 비용은 궁극적으로 조합원들의 부담으로 귀속되므로 이를 증빙 없이 사용할 수는 없다”면서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업무상 배임’ 등의 죄책을 물을 수 있으며, 민사상 그러한 비용은 추진위원장 개인이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3㎡당 사업비가 747만 원?…소문 무성
조합 설립 동의 ‘철회’ 원하는 주민 늘어

 
일각에선 지난 2008년 11월 주민 총회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최근에야 3.3㎡당 사업비가 747만 원이 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갈등이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홍 씨 등에 따르면 이미 총 사업비가 수시로 변경된 데다 구분소유자가 필히 숙지해야 할 면적별(3.3㎡당) 부담금과 사업 청산 후 조합원들의 재산 귀속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없어 재건축 참가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란 게 취재에 응한 주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사업비가 3.3㎡당 747만 원이 드는 사업 계획임을 모른 상태에서 오로지 조합원 자격을 얻기 위한 동의서인 줄만 알고 날인ㆍ제출한 동의서”라면서 “이는 명백한 착오에 의한 동의서로서 조합 설립 동의를 철회하고 싶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일부 토지등소유자 “‘막무가내’ 좌시 못해” 청원

한편 본 정비사업의 비상대책위원회 격인 ‘둔촌주공 바른 재건축을 위한 모임(이하 바재모)’은 지난달 13일 주민 연명으로 강동구청장에게 조합 설립 승인을 유보해 달라며 청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청원 사유는 ▲2008년 11월 주민총회에서 결의한 안건 제2호와 제3호가 법원에 의해 무효로 판명됐으므로 확정 판결까지 유보해 달라는 것, ▲2009년 6월 추진위가 개최한 주민 설명회에서의 정비사업 변경 계획 1ㆍ2안과 같이 현 추진위에서 변경코자하니 선 변경 후 승인해 달라는 것, ▲많은 주민들은 투명하고 신속한 사업 진행을 위해 ‘공공관리자제도’를 수용하고 싶어 하므로 조합 승인을 유보하고 공공의 개입을 촉구하는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바재모의 한 관계자는 “현 추진위의 막무가내(莫無可奈)식 방법으로는 본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없다”면서 “소수의 집행부와 협력 업체들의 사주에 의해 문제가 발생했으므로 그들은 절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용어 정리
 
ㆍ도시정비법 시행령 제26조 제2항
- 제1항(토지등소유자의 동의는 국토해양부령으로 정하는 동의서에 동의를 받는 방법에 따른다)에 따른 동의서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돼야 한다.
- 제2호에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략적인 금액’이, 제3호에 ‘제2호에 따른 비용의 분담 기준’이 포함돼야 함을 규정함.
 
ㆍ제척(除斥)
- 배제하여 물리침.
- 재단의 청산과 같은 경우에 일정 기간 내에 신고를 하지 아니하는 채권자를 변제 또는 배당에서 제외하는 일.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