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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자인한 ‘뉴타운’ 이대로는 안 된다: 2011.01.07 15:58 입력 | 2011.01.07 17:08 수정

서울시 뉴타운지구 내 존치지역 건축제한 해제 
‘출구전략’ 가동…‘면피 행정’ 비판 커졌다
 
[도시재생신문 정훈 기자] 서울시내 뉴타운 사업이 지구 지정 수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시재생신문은 지난해 10월 <서울 뉴타운사업 지지부진 제도 실효성 도마에>란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에 대해 자세히 다뤄 보았다.
 
여기에 지난 4일 서울시가 시내 뉴타운 지구 내 존치지역 30곳의 건축허가제한을 해제하면서 애초에 시장(市長) 역점 사업으로 추진돼 ‘옥동자’ 대접을 받던 뉴타운이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는 거 아니냐는 주장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갖가지 분쟁에 얽혀 가뜩이나 사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마저 손을 놓아 버리는 듯한 인상을 풍기면서 뉴타운 사업의 장기 표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비례해 서울시를 비난하는 강도 또한 세지고 있다. 서울시가 시내 곳곳을 ‘투기판’으로 만들고 해당 구역 주민들의 기대감만 잔뜩 높여 놓은 채, ▲건축허가제한 해제 ▲휴먼타운 추진 등으로 ‘뒤통수’를 치고 있다는 것.
 
용산구 한남동에 살고 있는 K씨는 “애초에 원치도 않았던 개발을 서울시가 밀어붙이더니 이제 와서 발을 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우려스럽다”며 “이번 서울시 조치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나타냈던 구역들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면 뉴타운 사업은 조기에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다”고 토로했다.
 
업계 관계자 Y씨는 “수많은 시민들이 뉴타운 정책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서둘러 마무리할 책임이 있는 서울시가 오히려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궁리를 하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뉴타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서울시 주택본부는 전체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1월 현재 서울시내 뉴타운 사업 지구는 시범지구 3곳(은평, 길음, 왕십리), 2차 지구 12곳, 3차 지구 11곳 등 총 26곳으로, 지난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 지정됐다. 이는 다시 촉진구역 196곳, 존치정비구역 28곳, 존치관리구역 51곳 등 275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입주를 비롯해 착공 이후 단계에 돌입한 곳은 시범지구 3곳과 ▲강북구 미아뉴타운 ▲동대문구 전농ㆍ답십리뉴타운 ▲동작구 노량진, 흑석뉴타운 ▲마포구 아현뉴타운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 등 9곳에 불과하다.
 
3개 지구로 구성된 은평뉴타운의 경우 1ㆍ2지구는 이미 입주를 시작했고, 3지구는 올해 또는 내년 입주가 예정돼 있다. 길음뉴타운은 길음 2ㆍ4ㆍ5ㆍ6ㆍ7ㆍ8ㆍ9구역이 준공된 상태다. 왕십리뉴타운 3개 구역 중 2구역은 지난 10월에 착공, 1ㆍ3구역은 올해 또는 내년에 착공될 전망이다.
 
이 밖에 공덕5구역, 아현3구역(이상 아현뉴타운)이 착공했고, 전농ㆍ답십리뉴타운 12구역이 준공, 7구역이 착공했다. 노량진뉴타운 1구역, 흑석뉴타운 4ㆍ6구역, 미아뉴타운 6ㆍ8ㆍ12구역이 착공했으며 가재울뉴타운 1ㆍ2구역이 준공됐다.
 
이를 종합해 보면 전체 275개 뉴타운 정비구역 가운데 착공 이후 단계로 사업이 진행이 된 곳은 23곳에 불과하다.
 
균형발전촉진지구 9개 사업장을 포함해도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최규성 의원(민주당)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이를 포함한 전체 305개 구역 중 조합이 설립된 곳이 118개(38.7%)에 그쳤고 준공된 곳은 15개에 불과해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 최규성 의원은 “지난 2003년 이후 5년간 부동산 활황기에 향후 인구 변동, 경기 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치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추진한 결과”라며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수익성이 떨어져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또 “더 이상 뉴타운 사업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민들이 알게 됐다”며 “많은 지역에서 주민 반대가 끊이지 않고 이해당사자들 간 소송 제기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이 지지부진하면서 뉴타운 지구 내에는 철거가 진행되다 중단된 곳도 부지기수다. 서울시내에만 재개발 주택의 17%에 해당하는 4200여 채의 주택이 ‘흉물’로 남아 있다. 재건축 사업 구역까지 포함할 경우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서울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서울시를 벤치마크 삼아 전국 곳곳에서 시행됐던 뉴타운 사업이 곳곳에서 좌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
 
지난해 10월 경기도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도내 뉴타운 사업을 추진 중인 12개 시(市) 22개 지구 가운데 착공에 들어간 곳은 부천 소사지구 1곳뿐이다. 재정비촉진계획이 결정된 138개 구역 가운데 조합이나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가 설립된 곳은 각각 5곳과 29곳에 불과하다. 104개 구역은 감정평가조차 마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인천광역시과 경기 군포시 등에서는 일부 뉴타운 사업장이 사업 지구에서 해제되기도 했다. 경기 부천시의 경우 고강ㆍ소사ㆍ원미지구 등에서 상당수 주민들이 사업 철회를 요구해 해법 찾기에 여념이 없다.
 
경기도 평택시는 최근 관할 팽성읍 안정리 일대 50만400㎡에 대한 뉴타운 해제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0월 이곳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 조사 결과 ‘뉴타운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18%에 그친 데 따른 후속 조치의 성격이 짙다. 이곳은 지난 2008년 뉴타운으로 지정된 이후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 온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해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부산광역시 역시 지난달 시내 뉴타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건설 경기가 위축돼 시공자를 선정하기 어려운 데다 사업이 장기화되면서 재산권 행사 불이익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뉴타운 지구 내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은 데다 건설사들이 해당 지역에서의 분양을 꺼리면서 더 이상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조만간 보다 심층적인 조사를 한 뒤 이를 바탕으로 광역 개발이 아닌 소규모 개발 방식 등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건축허가제한 해제가 ‘도미노 현상’ 부르나
서울시의 이번 건축허가제한 해제 조치가 부를 파장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대로 사업을 추진하기에 한계가 온 사업장 내 주민들이 앞서 해제된 지역과의 형평성을 문제 삼으며 해당 사업장의 건축허가제한 해제 또는 지구 지정 취소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순조로운 진행 양상을 보이던 구역들도 이번 조치의 후폭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미 상당수 뉴타운 지구에서 조합 설립, 시공자 선정 등 각 사업 단계마다 불거지는 주민 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왕십리뉴타운 1구역만 하더라도 조합원이 의결한 관리처분계획을 관할 구청장이 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조합원이 조합 설립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아 제기한 소송에서 ‘조합설립인가 무효’ 판결을 받고 발목이 잡혔다. 가재울뉴타운 4구역도 비슷한 이유로 착공이 지연됐다.
 
이외에도 상당수 뉴타운 지구에서 조합과 그 반대파 간 대립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 또 200여 사업장이 세입자 이주 문제, 침체된 시황에 따른 수익성 문제 등으로 사업 추진을 위한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뉴타운 지구 전역에서 주민 간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되며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됐다”면서 “지난해 서울시가 ‘공공관리자제도’를 전면 시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여전히 이 제도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있는 데다 제도 곳곳에서 허점이 노출돼 실효성마저 위협받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市)가 앞장서 이른바 한계 사업장에 대한 건축허가제한을 해제하고 그것도 모자라 휴먼타운 운운하는 것은 뉴타운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 휴먼타운이 대안 될까? ‘제2 뉴타운’ 우려 ↑
한편 서울시는 건축허가제한이 해제되는 존치지역들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그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개발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울러 시(市) 차원의 대안으로 ‘휴먼타운’을 내세웠다.
 
휴먼타운은 전면 철거 방식의 기존 재개발 방식에서 탈피, 단독ㆍ다세대주택 밀집 지역과 골목길ㆍ공공장소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폐쇄회로(CC)TV ▲경로당 ▲어린이집 ▲주차장 ▲공원 등 주민 편의ㆍ복지 공간을 보완해 주는 저층 중심의 신개념 개발 방식이다.
 
서울시는 휴먼타운 방식의 개발로의 전환이 이른바 ‘지분 쪼개기’와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진 않을 것이며 이러한 방식의 개발을 선호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시(市) 측이 휴먼타운 방식을 선호하는 여론이 높은 곳으로 꼽는 지역은 기존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예정구역 가운데 ▲강북구 미아4동 75의9 일대 ▲노원구 공릉동 684의6 일대 ▲중구 장충동2가 112 일대 등 3곳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앞장서 휴먼타운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기존의 뉴타운 정책이 실패했다는 방증과 다름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자문에 응한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휴먼타운 정책이 뉴타운의 실패 원인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그를 보완할 수 있는 개선책을 담지 않은 채 지금과 같이 ‘대안’ 정도로만 가볍게 얘기된다면 결국 제2의 뉴타운으로 전락할 것이라 우려했다.
 
업계 전문가 B씨는 “뉴타운은 그 이름부터가 ‘신도시’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사람’이 빠져 있었다”면서 “이와 달리 휴먼타운은 ‘사람’을 중심에 둔 주거지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뼈대가 만들어질 듯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되지만 여기에 뉴타운에서 얻은 시행착오를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살’을 붙이지 못한다면 휴먼타운 역시 뉴타운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