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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폭탄·가계부채·수출부진 터널 속 한국경제: 2011.09.05 06:56 입력 | 2012.02.04 16:57 수정

송윤창 기자 songyc1@rknews.co.kr

한국경제가 긴 터널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각종 경제지표가 전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불안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수출부진에다, 살인적인 물가와 점점 증가하는 가계빚 연체율까지. 총체적인 부실이다.
 
현 정부 초기부터 시작된 물가잡기는 이미 실패로 끝났고, 가계부채는 개별 가계의 문제를 넘어 이미 한국경제의 중장기적인 성장을 가로 막는 위험요인으로 부상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유럽 발 재정위기에 따른 선진국경제의 침체는, 한국경제의 주성장동력인 수출에 찬물을 끼얹어 8월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8억불로 급감하는 등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문제는 현재 정부가 쓸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물가와 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금리인상카드는 세계경제 부진으로 쓸 수조차 없는 상태다.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더 어렵다. 지난 9월 1일 물가 관련 브리핑 도중 “비가 어느 정도 와야 감당을 하지…”라고 중얼거렸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 현재 정부가 안고 있는 고민을 모두 담은 듯하다.
 


서민 울리는 물가폭탄…정부 속수무책
 

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섰다. 지난 9월 1일 통계청은 8월 소비자 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3% 올랐다고 밝혔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5%대에 진입한 건 2008년 9월(5.1%) 이후 3년 만이다. 연평균 물가 상승률 목표를 4%로 잡은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8월 소비자물가가 급등한 것은 채소 등 농산물 가격 고공행진과 금값 급등세의 영향이 컸다. 8월 물가의 전월 대비 상승률은 0.9%로 이 가운데 채소류와 금반지가 기여한 비율이 71.4%에 달한다. 8월 신선채소 지수는 171.2. 7월에 비해 31.8%, 1년 전보다 21.6% 올랐다.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채소가 밭에서 썩어버린 탓이다. 또 세계경제 불안으로 금값이 급등세를 보였다. 금반지 값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9.1%나 뛰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세운 올해 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연 4.0%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월부터 8월까지 평균 물가 상승률이 4.5%인 점을 감안하면, 이제 남은 9∼12월 월별 물가 상승률을 매월 3.0% 정도로 묶어야 겨우 목표달성이 가능하다. 
 
정부는 9월부터는 물가가 그동안의 상승에 따른 기저효과로 3%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추석 이후에는 버스·지하철·택시 등 대중교통요금과 상하수도료·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이마저도 그저 정부의 기대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일각에서는 5%대의 물가상승에 따른 금리 인상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와 유럽 발 재정위기 등 국내외 여건이 금리 인상에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지만 당초 4%대 물가 목표를 제시한 한국은행이 ‘물가 쇼크’를 탈출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1000조…은행도 연체율 증가
 

가계부채는 이미 한국경제의 잠재된 시한폭탄이다. 9월 4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권 가계대출은 8월 한 달간만 6조3000억 원 늘었다. 7월 증가액 4조3000억 원에 비해 46.5%나 증가했다. 6월 정부의 가계대출 종합대책이 발표된 후 7월에는 전달보다 23.2% 줄었지만 8월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 특히 7, 8월 두 달간 가계대출은 10조6000억 원 늘어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금감원 등은 전세금 급등으로 전세자금이 늘고 경기불안으로 생활자금 수요가 일면서 마이너스 대출이 급증한 것이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감독당국이 주요 은행들의 가계대출을 옥죄는 사이 제2금융권에서 대출이 급증하고 있다며 ‘풍선효과’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생계형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이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면 2금융권으로 몰리게 되고, 가계대출 문제가 터지면 먼저 2금융권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문제의 시그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대출규모의 증가와 더불어, 가계대출 연체율도 증가하고 있다. 7월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월 가계대출 연체율은 0.77%로 전달에 비해 0.05%포인트,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0.10%포인트 증가했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69%로 지난달에 비해 0.02%포인트, 전년 같은 기간으로는 0.16%포인트 껑충 올라섰다. 전월에 비해 0.16%포인트 하락한 집단대출 연체율을 제외하면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35%로 전월에 비해 0.08%포인트 증가세를 기록했다. 
 
기업대출 연체율도 1.44%로 전달에 비해 0.25%포인트 늘어났다. 그러나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는 0.31%포인트 줄어들었다. 대기업대출의 연체율이 0.40%로 전월 말 대비 0.15%포인트 증가했고,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1.71%로 같은 기간 0.28%포인트 상승했다. 이로써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1.13%로 0.16%포인트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국내은행의 대출 연체채권 잔액은 전달에 비해 1조7000억 원 증가한 11조7000억 원을 기록했다. 기업이 2조1000억 원, 가계에서 6000억 원 연체금이 늘었으며 주택담보대출에서는 7월에만 3000억 원 늘어났다. 
 
금감원은 이 같은 연체율 상승이 반기 말 결산이후 연체율이 상승하는 계절적 요인과 6월말에 있었던 기업 신용위험평가 등의 영향 때문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출 연체율 상승을 은행권이 연체채권 정리를 소홀히 한 탓으로 돌리고 있다. 금감원도 7월 들어 신규 연체 발생액은 오히려 전월보다 줄었다며 그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물가상승과 글로벌 금융불안 등으로 향후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는 금융당국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물가 상승과 글로벌 금융불안으로 향후 가계 채무상환 능력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대안도 고민하고 있다. 3건 이상 대출자에게 주택담보대출을 추가적으로 해줬을 경우는 고위험대출로 간주해 위험가중치를 높이는 방안과, 대출자의 부채비율(연소득 대비 총대출금)이 500%를 넘는 일시상환 단기대출에 대해서도 위험가중치를 높이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대출이 일정액을 넘어서면 대손준비금 외에 추가 준비금으로 쌓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다만, 기업대출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금 비율)을 인하하는 방안은 아직 구체적인 검토대상에서 빠져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가급등·성장저하…‘스태그플레이션’?
 

최근 생산과 수출이 둔화된 가운데 8월 소비자물가마저 5%대로 급등하고 무역수지도 흑자폭이 7월의 63억2000만 달러에서 8월 8조2000억원으로 크게 줄면서 한국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과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물가가 급등하고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경제가 침체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수출이 줄면서 무역수지가 악화된 가운데, 생산 역시 저조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광공업 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8% 증가했지만 전월대비로는 0.4% 감소했다. 광공업 생산이 전월보다 줄어들기는 지난 4월(-1.7%) 이후 석 달 만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정부는 지난 9월 1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9월에는 계절적 요인이 해소되면서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20억 달러 수준으로 늘어나고 경상수지도 160억 달러를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논란 차단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지난달 25~27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세계 중앙은행 총재 심포지엄에서 9월 3차 양적완화를 포함한 추가 경기부양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경기침체 위기가 인플레이션 위기보다 더 크며 상당히 완화된 통화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버냉키 의장의 견해에 동조했다. 
 
세계경제의 수장들이 글로벌 경기둔화를 인정한 가운데, 이것이 각국의 수요를 약화시켜 결국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에 하방위험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물가에서 성장 쪽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물가는 이미 당초 정부가 예상한 연간 4%를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 역시 9월 소비자물가를 그나마 보수적인 3% 후반, 4% 초반으로 예상해, 결국 4% 달성이 어려움을 일치감치 인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가 높은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맞물리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물가측면에서 정부가 9월 이후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 원유가격 상승 등 변수가 많아 예상만큼 크게 낮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수출부문 역시,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부문으로 전이되는 데 약 2~3개월 걸린다고 볼 때, 미국 신용등급이 하락한 8월에 이러한 불안요인이 없었음에도 수출이 크게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길어질 경우 무역수지가 더 악화 될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정부의 마땅한 대응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정부가 성장에만 몰두하면서, 저금리기조를 지나치게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