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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5구역 정비구역지정 놓고 4년째 줄다리기: 2009.12.23 15:34 입력 | 2009.12.30 15:33 수정

제기5구역 정비구역지정 놓고 4년째 줄다리기

 
제기 제5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136번지 일대ㆍ이하 제기5구역)은 고려대학교(이하 고려대ㆍ高大) 정문 앞의 낙후된 노후 주택과 상가들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사업이다. 하지만 이곳은 지난 3년여 동안 정비구역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이유는 제기5구역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는 고려대와 재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특히 제기5구역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에 따르면, 고려대는 자신들이 마치 심의위원회처럼 사사건건 설계(안) 변경 등을 요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제기5구역 재개발과 관련한 쟁점 사안들을 살펴보고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들어 보았다.
 

추진위, “더 이상 양보 못 해”
高大, “現방식 교육환경 저하”

 
제기5구역 추진위는 지난 2003년 6월부터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지난 2004년 7월, 추진위는 관할 동대문구청장으로부터 추진위 인가를 받았다. 당시 동의율은 토지등소유자 411명 가운데 208명의 찬성으로 50%를 간신히 넘긴 수준. 지난 2005년 1월 변경 승인 당시 동의율로 따져도 전체 384명 가운데 200명 찬성으로 동의율은 52%에 불과했다. 이미 추진위 승인 당시부터 분란의 씨앗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현재 이곳은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또한 절반에 달하는 데다 고려대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지난 2006년 10월(첫 정비구역지정 신청) 이후 2009년 현재까지 3년여 동안 정비구역지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정비구역지정을 마쳐야 조합을 설립하고 시공사를 선정하는 등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계획 등 재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제기5구역 추진위는 동대문구청으로부터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지정 등을 위한 공람공고를 받은 상태다. 공람공고에 따르면, 본 구역에는 60㎡ 이하 임대주택 144세대를 포함해 총 845세대가 새로 건립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추진위 측이 고려대 측과 협의를 거쳐 양보한 결과라는 게 추진위 측의 주장이다. 추진위 관계자 김 모 씨는 “지난 2006년 건축계획 때만 하더라도 신축 예정 세대수는 902세대였다”면서 “그러던 것이 고려대 측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우리가 양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조 모 씨는 “관할 구청과 서울시 측이 ‘주변 학교(고려대)와 어울리는 설계안이 도출돼야 정비구역지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하는 바람에 누차 설계안을 변경했고 그에 따라 설계 변경으로 들어간 비용이 엄청나다”면서 “사실상 ‘재개발을 하지 말라’는 발목 잡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고려대 측은 “학교 주변에 대학 문화에 맞는 타운이 형성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고층 아파트 건설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동대문구청에 수차례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 시설부의 김흥덕 과장은 “학교 정문 앞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한다는 데 대해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다만, 학교 입장에서는 해당 구역 내에서 하숙을 하는 학생들의 주거 환경도 고려해야 하고 (본교가) 동남향으로 지어진 구조적 특성상 고층 건물이 들어설 경우 일조권 등을 침해받을 공산이 커 무작정 찬성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교수 623명도 지난해 6월 정문 앞 일대의 재개발 계획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담긴 건의문을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동대문구청 등에 전달한 바 있다.
고려대 학생들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학생들은 일찍부터 ‘고려대 앞 아파트 재개발 반대 학생 모임’을 구성했다. 이 모임 구성을 주도한 이 모 씨는 지난 2007년 1월에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월 30일, 고려대 총학생회(이하 총학)는 인근 주민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총학 측은 “본교 정문 앞 35층짜리 고층아파트 재개발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보름 뒤인 지난 10월 16일에는 고려대 학생 30여 명이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앞에서 ‘제기5구역 개발 기본계획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재개발로 인해 현재 인근에서 하숙을 하고 있는 학생 900여 명을 포함해 새 아파트에 입주조차 못하는 영세 주민들 상당수가 이주해야 한다”면서 “이로 인해 학생들의 평균 주거비용이 오르게 될 것이고, 학생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정문 앞 식당과 상가들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개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제기5구역 추진위는 “지난 수십 년간 이곳 주민들은 고려대 학생들의 과격 시위로 인한 피해를 감내하며 살아 왔다”면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재산권을 행사하려는 주민들의 권리를 고려대가 가로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진위 관계자 류 모 씨는 “지하 연결 통로를 제외하면 사실상 고려대 측 요구를 모두 반영했다”면서 “(고려대 측이) 이 이상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키려 한다면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씨는 “지금껏 수차례 협의를 거쳐 고려대 측 의견을 반영한 것은 지난 30~40년간 동고동락해 왔던 정리(情理)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비구역지정이 무산된다면 고려대 측이 민영 사업인 재개발을 통해 한몫 잡으려는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교육기관의 설립 취지를 떠나서라도 지난 수십 년간 함께 해온 이곳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도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흥덕 과장(고려대 시설부)은 “본교 역시 해당 구역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난처한 상황”이라면서 “이제껏 ‘협의’는 있었지만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만큼 앞으로 본교와 추진위 측이 상생하는 방향으로 양측의 입장이 정리됐으면 한다”며 분쟁 해결의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20층 높이 계획 高大 반대에 변경
조망권 보장 대신 중앙광장ㆍ35층
이번엔 광장-高大 지하 연결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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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측 제시안(좌)과 추진위 측 재상정안(우) 비교
 
애당초 제기5구역 추진위는 최고 20층(약 57m) 높이로 14채의 아파트를 건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고려대 측이 “본교 정문에서 정릉천을 바라본 방향에 20층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면 조망권을 해치는 등 학교 측 피해가 클 것”이라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추진위는 설계안을 변경해 고려대 정문에서 정릉천을 바라본 방향에 아파트 대신 ‘중앙 광장(sunken garden)’을 짓기로 하고, 대신 가장자리 쪽으로 최고 35층(103.5m) 아파트를 지어 용적률을 높이기로 했다. 이렇게 해도 사업 초기 계획보다 신축 예정 세대수가 50세대가량 줄어들면서 추진위 측 추산에 따르면 약 300억 원가량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추진위 측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고려대 측 요구를 받아들임에 따라 정비구역지정이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고려대 측에서 “(제기5구역 내) 중앙 광장과 본교 지하 주차장을 연결하는 통로를 내 달라”고 요구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됐다는 것이 추진위 측의 주장이다.
추진위 관계자 류 모 씨는 “고려대 학생들은 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는데, 학교 측은 우리 추진위에 ▲‘U’자형 단지 조성 ▲중앙 광장 설치 ▲고려대역과 연결되는 지하 통로 설치 ▲건물 높이 제한(25층) 등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사업을 진행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에 대해 고려대 시설부의 김흥덕 과장은 “본교는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면서 “지하 통로 역시 우리가 일방적으로 ‘연결해 달라’는 식으로 한 게 아니라, 그쪽(추진위)이 본교의 조망권을 사업 계획에 반영해 높이에 제약을 받는 점을 감안해 지하 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시키는 차원에서 학교 공간을 ‘개방’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제안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23일 심의…정비구역지정 돼도 문제
반대 주민 많아 조합 설립 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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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교우회 홈페이지 남아 있는 홍사립 전 동대문구청장의 인터뷰 기사
 
제기5구역의 경우 오는 23일 정비구역지정 심의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심의를 통과하더라도 앞길은 가시밭길이 될 전망이다. 정비구역지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조합 설립이란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재개발 자체를 놓고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조합설립인가에 필요한 동의율을 채우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제기5구역의 경우, 이번에 정비구역지정이 이루어지더라도 사업 초기의 낮은 언덕 하나를 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제기5구역 추진위가 추진위 승인 당시 동의율이 과반에 ‘턱걸이’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6조 제1항에는 ‘주택 재개발 사업 및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추진위가 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때에는 토지등소유자의 3/4 이상 및 토지 면적 1/2 이상의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동법 제13조 제3항은 ‘추진위 구성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는 조합의 설립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준용하면 제기5구역 추진위가 조합 설립에 필요한 주민 동의율을 충족시키려면 향후 23%포인트가량의 동의율을 더 확보해야 한다. 토지등소유자의 수를 감안하면 약 90명의 주민들로부터 ‘조합 설립에 찬성한다’는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이 지역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인근 재개발 정비사업장에서 만난 한 추진위원장은 “(제기) 5구역은 현 추진위와 그들의 개발 방식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다”면서 “이는 조합 설립에 걸림돌이 되는 만큼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제기5구역 재개발 반대 주민 모임’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대부분은 고려대 학생을 상대로 하숙을 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면서 “그러한 사람들 대다수는 이곳에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개발에 동의한 사람들이 과연 조합이 설립되고 재개발이 본격화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지 걱정”이라면서 “영세 세입자가 대부분인 원주민들의 터전을 빼앗아 가면서까지 재개발을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제까지 정비구역지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배경에 “구청장이 고려대 출신이었기 때문에 모교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기5구역 추진위 관계자 김 모 씨는 “지금은 물러난 전(前) 구청장이 재임 당시 ‘내 임기 중에 모교 정문 앞에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고려대 교우회와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런데 실제로 그가 물러날 때까지 3년 가까이 정비구역지정조차 이뤄지지 못하자 주민들 사이에는 ‘고려대 출신인 구청장이 우리 구역의 재개발 사업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났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 5월,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구청장직에서 물러난 홍사립 전 동대문구청장(사학과)이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인터뷰한 내용이 고려대 교우회 홈페이지(http://www.kuaa.or.krㆍ2007년 12월 14일자ㆍ<사진> 참고)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자문에 응한 업계 관계자들은 “3년여 동안 정비구역지정조차 받지 못한 주민들이 이와 같은 음모론을 생각할 정도로 절박하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음모론은 음모론일 뿐 이를 더 이상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정훈 기자 <A href="mailto:hjeong25.rn@gmail.com">hjeong25.rn@gmail.c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