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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ㆍ재건축 추진위원회 수백 곳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2010.01.07 16:04 입력 | 2010.01.15 22:16 수정

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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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ㆍ재건축 추진위원회 수백 곳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전국 수백 곳의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조합 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바람 앞의 등불’ 처지에 놓이게 됐다. 최근 ‘정비구역지정 전에 설립된 추진위는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르면서 개발에 반대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위 사례에 속하는 추진위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지난달(2009년 12월) 11일, 서울 중구 신당 제8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장(이하 신당8구역) 내 일부 주민이 “정비구역지정도 되지 않았는데 관할 구청이 추진위 승인부터 한 것은 위법”이라며 중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추진위가 구성되려면 그 전제로 토지등소유자의 범위가 확정될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한 토지등소유자의 범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특별시장ㆍ광역시장 또는 도지사에 의한 정비구역지정 및 고시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정비구역지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주민이 임의로 확정한 구역을 기준으로 추진위가 설립될 경우, 정비사업과 관련된 법률관계 등이 불확실하게 돼 사업 추진에 혼란을 주고 해당 구역 내 토지등소유자의 법적 지위 역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판결을 이끈 이내주 수석부장판사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살려서 판단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 광명마을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구역 내 일부 주민들이 “정비구역지정 전에 설립된 추진위는 무효”라며 원주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주민 동의(과반수)가 필요한 추진위를 구성하려면 토지등소유자의 범위가 먼저 확정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정비구역 지정ㆍ고시가 선행돼야 함이 명백하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2009년 10월 29일 선고 2009두12297 판결) 
 
업계 관계자들은 서울시내 200여 개, 전국적으로 700개에 달하는 추진위가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고, “소송이 이어질 경우 재개발ㆍ재건축 시장이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한가람법률사무소의 조창혁 변호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재개발ㆍ재건축을 시행 중인 추진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를 문제 삼아 소송을 걸게 되면 해당 추진위는 패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법무법인 정률의 김학성 변호사 역시 “이번 판결에 따라 정비구역지정 전 설립ㆍ승인된 추진위가 구역지정과 관련된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패소해 설립 무효ㆍ취소 처분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해당 추진위가 적법한 절차에 따랐고, 그 과정에서 명백한 하자가 없다면 전국 수백 개에 달하는 추진위를 무조건 취소 또는 무효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놨다. 
 
 
 
작년 2월에야 ‘구역지정 이후’ 설립 시기 명시 
업계, “국토부 지침 따랐을 뿐” 성토 
전문가들, “현실 무시한 판결” 비판 
 
법원의 판결이 몰고 온 파장이 일파만파 퍼지는 가운데 관계 법령의 미비가 혼란을 야기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가 재개발ㆍ재건축과 관련된 제도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서울시 동대문구의 한 추진위 관계자는 “최근에 내려진 판결의 영향을 받게 될 대다수 추진위들은 설립 시기를 명시한 법령이 없었을 때 관계 당국의 지침에 따라 추진위를 설립했을 뿐”이라면서 “임의로 추진위를 설립한 것도 아닌데 일부 사례를 가지고 마치 전체 추진위가 그러한 것처럼 뭉뚱그려 판단한 것은 형평성 등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추진위(서울시 강남구 소재) 관계자는 “추진위 승인 시기를 명문화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각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절차에 맞춰 관할 구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이를 무효화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추진위 설립 시기가 관계 법령에 명시된 것은 지난해 2월 6일. 당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추진위 설립 시기가 ‘정비구역지정 이후’로 명시됐다. 관계 법령에 설립 시기가 명시되기 전 재개발ㆍ재건축을 추진하고자 하는 구역들은 국토부가 지난 2003년 9월에 만든 지침에 따라 추진위를 설립했다. 국토부는 지난 2003년 도시정비법을 제정하면서 사업 진행 순서를 명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도시정비법 시행 초기 ‘추진위 설립 시점’을 놓고 혼란이 발생했고, 결국 그해 9월 ‘추진위를 먼저 설립해도 된다’는 취지의 지침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로 인해 지난 2003년 9월부터 작년 2월 사이에 이 지침을 근거로 설립된 추진위는 사실상 설립 근거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추진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법원이 현실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법리적으로만 판단했다”며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시 중구의 한 추진위 관계자는 “지침에 따랐을 뿐인데 법원의 판결을 소급 적용해 이미 추진위 승인까지 받은 것을 무효화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우리 구역도 신당8구역과 같은 처지에 놓여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 “경과 기간 종료 전 대법원 판결은 현실 무시” 
 
서울시 동대문구의 한 추진위 관계자는 “추진위 구성 시기가 정비구역지정 이후로 명문화되었지만 이미 동의서를 징구하고 있는 추진위들을 위해 부칙에 경과 규정을 둬 지난해 11월 6일까지는 종전대로 추진위를 승인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이러한 부칙 규정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 이번 판결은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시정비법 개정안(2009년 2월 6일 개정) 부칙 제1조는 관련 규정 시행일을 6개월 유예했으며, 제3조에는 ‘추진위 승인에 관한 개정 규정은 법 시행 후 최초로 추진위 구성 승인을 신청한 분부터 적용하되, 종전의 규정에 따른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법 시행일로부터 3개월 이내(2009년 11월 6일까지)에 추진위 구성 승인을 신청하는 경우 적법한 추진위 구성 승인 신청으로 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실제로 상당수의 추진위가 경과 기간 중에 추진위 승인 신청을 해 인가를 받았다.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의 한 추진위 관계자는 “부칙에서 정한 경과 기간 중 추진위 승인 신청을 해 승인을 받은 곳이 서울시내에만 수십 개에 이를 것”이라면서 “법률이 정한 경과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대법원이 이에 반하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수많은 추진위만 피해를 입게 됐다”며 혀를 찼다. 그는 이어 “정비구역지정을 받으려면 그에 필요한 설계 등 사전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면서 “재판부가 판결에 추진위가 없으면 사실상 재개발ㆍ재건축을 진행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데 유예기간마저 무시하는 듯한 판단을 내려 허탈할 뿐”이라고 말했다. 
 
 
 
03년 7월~09년 2월 설립된 추진위 
소송 휘말리면 ‘패소’ 가능성 높아 
조합 설립 시 하자 치유 여부도 논쟁거리 
 
업계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도시정비법이 시행된 지난 2003년 7월부터 추진위 설립 시기를 법에 명시한 2009년 2월까지 정비구역지정 이전에 설립된 추진위들이 소송에 휘말릴 공산이 크다. 이때 정비사업의 이해관계인이 해당 추진위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법원이 판단을 하게 된다. 소송이 제기되지 않으면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소송 대상 추진위의 설립이 승인된 지 90일 이내라면 ‘취소’ 소송을, 90일 이후라면 ‘무효’ 소송을 낼 수 있다. 일단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해당 추진위는 패소할 확률이 높다는 게 자문에 응한 법률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다만 ‘이미 조합이 설립돼 사업이 진행된 경우’에는 자문 대상마다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K법률사무소의 김 모 변호사는 “선행 절차가 잘못된 만큼 처음부터 다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추진위가 조합으로 전환한 경우에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아야 명백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가람법률사무소의 조창혁 변호사는 “조합이 설립됐고 이후 사업이 진행됐다고 해도 정비사업의 전제 조건이 흔들리는 만큼 하자 치유 여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정비사업을 시행하려면 조합을 설립해야 한다. 조합을 설립하려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추진위를 구성해야 한다”며 “관계 법령에 토지등소유자와 정비구역의 정의, 추진위 설립 시기 등이 명시돼 있는 만큼 그러한 추진위의 설립 근거가 취소ㆍ무효 판단을 받게 되면 정비사업의 전제 조건이 흔들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도시정비법 제13조 제1항에는 ‘정비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경우, 토지등소유자로 구성된 조합을 설립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동법 제13조 제2항에는 ‘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경우,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조합 설립을 위한 추진위를 구성해 시장ㆍ군수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돼 있다. 또 동법 제2조에는 ‘토지등소유자’를 ▲재개발 사업의 경우, ‘정비구역 내 소재한 토지ㆍ건축물의 소유자 또는 그 지상권자’로, ▲재건축 사업의 경우, ‘정비구역 내 소재한 건축물 및 그 부속 토지의 소유자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비구역’에 대해서는 ‘정비사업을 계획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제4조(정비계획의 수립 및 정비구역의 지정)의 규정에 의해 지정ㆍ고시된 구역’이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비사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정비구역 내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추진위와 조합을 설립해야 하는 만큼 조합 전 단계인 추진위의 구성에 하자가 있다면 이미 조합이 설립ㆍ승인돼 사업이 진행됐다고 하더라도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천지인법률사무소의 남기송 변호사는 “추진위와 조합은 완전히 다른 법인격체이며, 조합이 구성되면 추진위는 해산된다”면서 “이미 조합이 설립됐고 그에 대해 법률적으로 특별한 이의 제기가 없다면 하자가 치유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P로펌의 박 모 변호사는 “지난 2005년 판례에서 보듯 이미 조합설립인가까지 받은 상황에서 추진위 승인 여부를 다투는 것은 법률상 이익이 없다”면서 “추진위 승인 과정상의 하자는 조합설립인가 과정상의 하자가 아니라고 봐야 하며 설령 하자라고 하더라도 그 승계를 제한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법률 전문가 김 모 씨는 “추진위 운영 규정 등에 ‘추진위는 조합설립인가일까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조합이 설립되면 모든 업무와 자산을 조합에 인계하고 추진위는 해산한다’고 규정돼 있는 만큼 추진위와 조합을 다른 법인격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대법원 관계자 역시 “소송이 발생할 경우 먼저 하자가 치유됐다고 볼만한 사안인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고, 다음으로 어느 정도를 하자가 치유된 수준으로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해 이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는 것을 암시했다. 
 
 
 
기본계획 수립된 곳까지 대법원 판례 적용하면 시장은 ‘패닉’ 
 
이번 법원 판결의 해석ㆍ적용 범위에 대해 정비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의 수립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의 대법원 판결은 원주시 학성동 광명마을 추진위에 대한 ‘설립승인 무효확인소송’에 대한 것으로 광명마을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위를 설립했다. 해당 구역은 판결 선고 시까지 기본계획 공람은 있었으나 아직 기본계획이 확정ㆍ고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한결의 이인호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위 승인을 받은 곳에 대한 판결로 기존 하급심 판결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며 “기존 하급심에서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경우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의 동의 여부를 확정할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승인 무효라는 판결이 있었던 데 반해 기본계획이 수립돼 있던 중동 제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구역(경기도 성남시)에서는 ‘정비구역지정 전이라도 추진위 승인이 가능하다’는 판결이 있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을지의 차흥권 대표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기본계획 수립 여부를 구별하지 않고 내린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는 기본계획 수립 후 구역지정까지 이루어졌다면 소(訴)를 다툴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계획이 수립된 곳은 어느 정도 토지등소유자에 대한 범위를 확정지을 수 있다”며 “따라서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추진위를 설립했다면 (이번 판결이) 동일하게 적용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 변호사는 “다만 기본계획은 수립됐지만 구역지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추진위는 여전히 대법원 판결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 기본계획 수립된 ‘신당8구역’ 판결後 업계 ‘충격’ 
 
하지만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 12월 신당8구역에 대한 ‘추진위 승인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오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올 당시만 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광명마을은 관할 시(市)의 기본계획이 없어 추진위 승인이 무효가 된 것이기 때문에 기본계획이 있는 대도시의 경우 토지등소유자가 개략적으로 확정된 만큼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또한 구리시, 남양주시, 파주시, 평택시(이상 경기도), 강원도 원주시 등 인구 50만 명 미만의 경우,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라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이들 도시에 국한된 판결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구 50만 미만 지역 구역지정後 추진위 승인 
일부 지자체 예산부담 이유 위반…결국 부메랑 
 
과거 국토부(당시 건설교통부)는 인구 50만 명 미만 도시의 경우 ‘정비구역지정 이후 추진위 설립을 승인한다’는 규정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굳이 이를 지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추진위 설립 이전에 정비구역을 지정하게 되면 개발의 주체가 없기 때문에 기본계획 수립에 따른 각종 비용(3~4억 원)을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하는 만큼 지자체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규정을 준수하게 되면 특정 지역의 개발을 위해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한 지를 놓고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게다가 ▲추진위 승인 전 정비구역지정 시 건축 행위 등이 제한받게 되므로 민원이 급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일부 지자체에서는 기본계획이 없는 상황에서도 추진위 설립을 허용했다. 하지만 인구 50만 명 미만 도시에서 기본계획 수립 전에 승인된 추진위들은 이번 ‘폭풍’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면서 커다란 부담을 떠안게 됐다. 
 
원주시 관계자는 “구역지정까지 2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가운데 1명이라도 소송을 걸게 되면 추진위 설립에 투입한 비용과 시간을 날리게 된다”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사업이 지연되더라도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 승인 취소를 선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재개발 사업을 이끌고 있는 추진위원장 김 모 씨는 “신당8구역의 경우 원주시와 처한 현실이 다르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해당 추진위의 설립을 무효화하는 판단을 내린 재판부의 현실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실을 무시한 판결 때문에 전국의 수많은 정비사업장이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 구역만 해도 신당8구역 못지않은 홍역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의 파급력을 놓고 “기본계획 수립 이전에 추진위를 설립한 구역들은 문제가 될 것이 확실시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정비구역지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기본계획이 수립된 구역’에까지 판결이 확대 적용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번 판결이 ‘정비구역지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기본계획은 수립된 곳’까지 적용될 경우, 전국의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이 패닉(panicㆍ공황)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대부분의 추진위가 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 송 모 씨는 “행정법원의 판결대로라면 기존의 추진위 가운데 상당수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면서 “추진위 설립을 비롯해 정비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투입한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 이해관계인들의 극심한 반발을 부를 것”이라 전망했다. 
 
 
 
행정법원 판결 적용 시 사업 ‘원점’으로 
구청 ‘항소’ 국토부 “무의미”…반발 확산 
 
이번 행정법원 판결의 적용 여부를 놓고 업계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행정법원 판결이 그대로 적용돼 법원이 추진위 무효 또는 취소 판결을 내리게 되면 해당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 관할 시ㆍ군ㆍ구청의 정비구역지정을 기다렸다가 추진위를 설립해야 하고, 이미 정비구역지정이 이루어졌다면 추진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 사업이 지연될 뿐만 아니라 추진위 설립비용 등도 추가로 소요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지방의 재개발ㆍ재건축 사업 구역과 건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태가 양호한 단독주택 비중이 높은 곳, 이해관계인이 많은 서울시내 사업장 등에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상대적으로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의 추진위를 비롯한 이해관계인들 사이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대대적인 반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고 정비사업의 현실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이번 판결은 커다란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이를 막아 궁극적으로 주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설 것”이라며 투쟁 의지를 밝혔다.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중구청 관계자도 “서울시의 업무처리기준을 따랐을 뿐 아니라 국토부에 질의한 결과, ‘추진위 설립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아 추진위를 승인했던 것”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구역 확대 전에 기본계획도 바꿔 토지등소유자가 거의 확정된 후 다시 추진위를 승인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모두 밟았음에도 추진위 승인 취소 판결을 내린 것은 대법원 판례를 획일적으로 적용한 행정법원의 명백한 잘못”이라며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2003년 11월 28일 ‘추진위 업무처리기준’에서 “기본계획이 수립돼 있는 경우에는 추진위 승인이 가능하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지난 2005년 3월에는 이 기준에 “추진위 승인 시 기본계획이 수립된 지역은 자치구 실정에 맞게 승인한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같은 해 12월, ‘주택 재개발 및 주거환경개선 정비사업 추진단계 업무통보’란 개선안을 각 구청에 통보하면서 정비구역이 지정ㆍ고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건축 추진위를 승인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도시정비조례를 개정한 경기도의 경우에도 정비구역지정 이전에 추진위를 승인해 준 데 대해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용인시 관계자는 “경기도 도시정비조례에 따르면 기존에 승인을 받은 추진위가 정비구역지정을 제안할 수 있게 돼 있다”면서 “이 조항에 따라 정비구역지정 전에 추진위 승인을 해 준 것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도 도시정비조례 제13조 제1항에는 ‘도시정비법 제13조에 따라 승인받은 추진위는 관할 시장ㆍ군수에게 정비구역지정에 대한 입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국토부의 경우에는 아예 이번 판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 주택정비과의 송승민 주무관은 “아직 1심 판결밖에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상급 법원의 판결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번 판결에 특별히 표명할 게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는 상급심에서 1심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기대와 1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법인 을지의 차흥권 대표변호사는 “당분간 하급심에서 재판부마다 어떤 기준을 놓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며 “아직 1심 판결인 만큼 추후 있을 상급심의 판결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도 혼란 예상 
 
한편 기본계획이 수립됐지만 정비구역지정 전에 추진위 승인 결정을 내린 대도시(인구 50만 명 이상)의 지자체들도 상급 법원의 판결이 원심 판결과 동일하게 나올 경우를 예상하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007년 1월에 정비기본계획을 내놓은 용인시의 경우, 재개발 구역 3곳 등 총 5곳을 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곳 모두 정비구역지정 전 추진위 승인을 내준 곳이어서 최악의 경우 사업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추진위 승인 후 3년이 다 돼 가도록 정비구역지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용인시의 한 재개발 사업장의 경우, 반대파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추진위 설립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 정비계획으로 의제 안 된 재건축 문제 
 
주택건설촉진법 제20조에 의해 수립된 아파트지구개발기본계획에 따른 고ㆍ저밀도 지구에 속한 재건축 추진위의 경우 개발기본계획이 정비계획으로 의제(擬制ㆍ본질은 같지 않지만 법률에서 다룰 때는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여 동일한 효과를 주는 일)되므로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개발기본계획이 정비계획으로 의제되지 못한 재건축 사업의 경우에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서초구만 보더라도 현재 단독주택 재건축 사업의 정비구역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데 개발에 반대하는 쪽에서 이번 판결들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공동주택 재건축 사업의 경우에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부칙(제9조)에 따라 추진위가 안전진단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정비구역지정 이전에 인가된 추진위 승인이 무효가 될 경우, 추진위가 안전진단을 신청할 수 없게 돼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비계획 및 정비구역지정 단계에서 관할 지자체장이 안전진단 실시를 결정하게 돼 상당 기간 사업이 지연될 수도 있다는 점만 봐도 그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칙 제9조는 재건축 사업의 안전진단에 대한 경과 조치로, 이에 따르면 시행일(2009년 2월 6일) 이전 추진위 구성 승인을 얻은 경우 해당 추진위가 안전진단 실시를 요청하면 시장ㆍ군수는 안전진단을 실시할 수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자문에 응한 업계 관계자들은 “추진위 승인 시기에 대한 법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반대파의 소송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러한 소송 증가는 사업 추진을 어렵게 만들고 제반 비용을 모두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전가하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