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뉴스! 정확한 정보! 도시재생신문 :: 강남 재건축의 ‘와룡(臥龍)’ 압구정 현대아파트

강남 재건축의 ‘와룡(臥龍)’ 압구정 현대아파트: 2010.02.24 16:10 입력 | 2010.02.25 11:15 수정

강남 재건축의 ‘와룡(臥龍)’ 압구정 현대아파트

 
‘강남 재건축’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다. 가격이 상승하든 하락하든 그 시작은 늘 강남 재건축이다.
 
그런 강남 재건축을 이끌던 지역들을 꼽자면 대치동 은마아파트(4424가구), 개포지구(2만8700여 가구ㆍ이상 강남구), 잠실 주공1~5단지(2만1000여 가구ㆍ송파구), 반포 주공1단지(3786가구ㆍ서초구) 등이다.
 
이들 가운데 은마아파트를 제외하면 모두 주공 또는 시영아파트다. 대부분 저층 아파트라 여러 단지를 묶어 재건축해야 사업성이 확보된다. 반포 래미안퍼스티지(2444가구)와 반포 자이(3410가구)로 각각 재건축된 반포 주공2단지와 3단지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송파구 가락 시영(1ㆍ2차 6600가구)과 강동구 둔촌 주공(1~4단지ㆍ5930가구) 등이 여러 단지를 묶어 재건축을 추진 중인 것도 일맥상통한다.
 
반면 민간 사업자가 지은 아파트는 대부분 중층 이상의 대단지라 재건축을 하게 되면 사업 규모가 크다. 사업성도 좋을 수밖에 없다. 은마아파트만 봐도 28개동에 불과한 단지인데도 세대수가 4000가구 이상이다. 그래서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은마아파트에 쏠리게 됐고, 지금도 오는 3월로 예정된 은마아파트 안전진단 결과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은마아파트의 명성을 무색케 하는 아파트가 있다. 바로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현대아파트(이하 압구정 현대)다. 압구정 현대 부지는 본래 현대건설이 경부고속도로를 공사하면서 외국에서 수입한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확보해 두었던 땅이었다. 하지만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가 놓이면서 압구정 일대는 강남의 노른자위 땅으로 부상했다. 바로 이곳에서도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알짜’ 부지에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이름이 붙은 대규모 민영 아파트 ‘압구정 현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압구정 현대는 지난 1975년 4월에 1차 사업이 시작됐다. 현대건설은 본격적인 주택 사업 추진을 위해 한국도시개발(지금의 현대산업개발)을 설립했다. 이에 따라 1~3차 사업은 현대건설이, 4~14차 사업은 한국도시개발이 주도했다. 1987년 4월까지 진행된 사업 결과, 이곳에는 중ㆍ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총 6148가구의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게 됐다.
 
1~2단지의 경우 열악한 기반 시설과 홍보 부족으로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현대’ 브랜드에 ‘강남’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중산층이 몰리기 시작했고 7단지 입주가 끝날 무렵 압구정 현대는 이미 명품 아파트 단지의 ‘왕좌’를 차지한 상태였다.
 
압구정 현대는 국내 아파트 역사에서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지난 1977년 현대그룹 사원을 위해 지은 아파트를 사회 고위층에게 특혜 분양하면서 오점을 남겼다. 또 강남 아파트에 투기 바람을 몰고 온 주범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강남 최고의 입지를 지키고 있는 매머드급 중층 단지로 명성을 지키고 있다.
 
이곳은 압구정고가차도(동호대교 진입로)를 기준으로 서쪽은 신현대, 동쪽은 구현대로 나뉜다. 구현대는 성수대교 동쪽의 8차(압구정2동)를 제외한 1~7차가 모두 압구정1동에 위치해 있다.
 

◆ 시작도 안 했는데 밥그릇 싸움? ‘棟대표 회장’ 자리다툼
지난해 10월, 압구정 현대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그달 29일 열린 입주자대표회의장에 주민들과 경호업체 직원, 경찰 등이 뒤섞인 채 욕설이 오가는 ‘촌극’이 빚어진 것.
 
소란의 이면에는 재건축을 둘러싼 아파트 동대표끼리의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 현 동대표 회장인 신 모 씨 측은 이날 “100명의 재건축 추진위원을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해 달라”는 안건을 들고 나왔다. 이에 일부 동대표 및 주민들이 반발, 충돌이 시작됐고 회의는 끝내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아파트 주민끼리의 (물리적) 충돌은 지난해에만 2번 발생했다. 같은 해 5월에는 현 동대표 회장 신 씨를 중심으로 한 재건축 추진위(가칭) 쪽이 ‘회장 임기를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안건을 들고 나와 충돌이 일어났다.
 
이쯤 되면 동대표 회장 자리를 놓고 ‘왜 저럴까’하는 의심이 들 만하다. 그러나 이곳 동대표 회장은 보통(?) 자리가 아니다. 인근 부동산중개소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윤 모 씨는 “압구정 현대 동대표 회장은 100명에 달하는 이곳 경비원들의 사실상 고용주이며 재건축이 본격화될 경우 공사비만 수조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재건축 조합을 이끄는 CEO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 대다수 재건축 단지에선 동대표 회장이 그대로 재건축 조합장을 맡는다. 단순한 암투가 아니라 국내 최대 ‘압구정 현대 재건축 주식회사’의 CEO 자리를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泥田鬪狗)’라는 얘기다.
 

◆ 재건축 Vs 리모델링
이곳은 동대표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갈등 외에도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를 놓고도 주민끼리 분열돼 대립하고 있다. 재건축을 지지하는 현 동대표 측은 반대파인 리모델링 추진위 측을 ‘먹튀’, ‘투기꾼’ 등으로 부른다. 리모델링 추진위 측도 “신 씨 등이 사욕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는 식으로 맞선다. 양측의 충돌로 지난해만 관할 경찰서에 접수된 고소ㆍ고발이 3~4건에 달한다.
 
압구정 현대의 갈등은 사실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참여정부 당시 정부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적극 권장했다. 그 결과 재건축의 꿈을 사실상 포기한 71동과 72동(압구정 현대5차)이 지난 2007년 강남구청에 주민 동의를 통해 건축심의안을 제출했고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통합 재건축’ 계획이 다시 논의되며 갈등이 표면화됐다. 재건축 추진위 쪽에서 용역 직원들을 고용해 71동, 72동 주민들에게 ‘리모델링 동의 철회서’를 받았다.
현 동대표 회장인 신 씨 측은 “단지 한복판에 ‘리모델링’ 단지가 먼저 세워지면 재건축 때 평면계획을 위해 그 단지를 수용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늘어나는 사업비 등은 조합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리모델링 추진위원장 서 모 씨 측은 “리모델링을 통해 현실적으로 주거 여건과 재산권을 높이자는 것인데 신 씨가 월권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시는 한강변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개발의 일환으로 압구정동(23개 단지 1만여 가구) 등을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다. 그만큼 압구정 현대 역시 본격적인 재정비 사업의 가시권에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압구정 현대 재건축 문제도 조만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리모델링보다는 재건축으로 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71ㆍ72동이 리모델링을 포기하고 재건축으로 전환을 검토 중”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미 수립된 이 일대 고층화 기본계획에 맞춰 과거 무산된 바 있는 초고층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압구정 현대가 업계 관계자 및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를 놓고 다투던 분쟁이 사라지더라도 동대표 회장 자리를 놓고 갈등이 재연될 소지가 큰데다 재건축에 진전이 있게 되면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로서 다시 한 번 강남 아파트의 ‘왕좌’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