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뉴스! 정확한 정보! 도시재생신문 :: 토론문화의 상실, 폭력이 앞선 사회

토론문화의 상실, 폭력이 앞선 사회: 2009.11.04 11:58 입력 | 2009.11.19 10:31 수정

김용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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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를 아는 지인(知人)은 가끔 필자를 가리켜 「의지의 한국인(?)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놀립니다. 필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웃음으로 받아 넘기곤 합니다. 그의 말이 뭐를 뜻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2005년 어느 여름날 노원구의 모(某)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로부터 주민총회의 사회(司會)를 의뢰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위원장을 비롯한 추진위원들의 연임을 의결하는 내용이 주요 안건이었는데 비대위가 필사적으로 총회의 개최를 막고 있었습니다. 
집행부는 이미 전체 토지등소유자 과반으로부터 「서면참석 및 결의(동의)」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세 차례의 총회는 비대위측에서 동원한 200~300명의 경호원들이 각 집행부 및 일반 주민들의 총회장 출입을 봉쇄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집행부는 건교부(지금의 국토부)로부터 ‘기(旣) 징구한 서면참석 및 결의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유권해석을 받아 놓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총회장을 구해놓으면 비대위 방해로 대관이 취소거나 출입이 봉쇄되는 상황이 반복되는데 있었습니다.
필자는 고심 끝에 집행부와 상의해서 총회장소를 아예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추진위원회 사무실 앞 광장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안전 요원 도움 없이 의장과 속기사, 사회자(필자)가 16톤 트럭에 올라타고 시간에 맞춰 광장에 진입한 다음 비대위 관계자들을 광장에 세워놓고 총회를 진행했습니다. 16톤 트럭은 적재함이 높아 사다리 등 보조기구가 없는 비대위 관계자들이 차에 올라와 총회진행을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추진위 집행부는 위 총회결과를 정리해서 구청으로부터 무난히 위원장 및 감사, 추진위원들의 연임을 승인받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이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군주(君主)로 세종대왕을 꼽는데 주저할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대왕께서도 가정적으로는 행복 보다는 불행, 기쁨보다는 근심으로 일생을 보내셨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셨는지요. 세종대왕께서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고통과 번민은 필자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간혹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의 고통과 번민을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대왕(충녕. 이하 같음)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은 왕이 되기 위해 (세종의)삼촌인 방번과 방석을 죽였고, 왕권강화를 위해 충녕과 가까운 외삼촌(민무구․민무질)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대왕 즉위 후 상왕(태종)이 되어 장인 심온(소헌왕후의 부친)을 반역죄로 몰아 죽였습니다. 
평소 가깝게 지내고 의지했던 외삼촌들, 그리고 좋은 관계를 갖고 있던 친․인척들이 아버지로 인해 마구 죽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어린 충녕(세종)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그리고 막상 당신이 왕이 되어서는 큰 며느리 (문종의 세자시절 빈)를 심한 투기 때문에, 다시 맞은 세자빈 역시 동성애(同性愛) 문제로 내쫓아야만 했고, 정신장애를 가진 며느리(임영대군의 처)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아들에게 첩을 권유했던 한 가족의 가장이자 아버지였던 세종대왕. 그 분이 돌아가신 다음 벌어진 손자(단종)의 일은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그러나 당신 재위중에는 단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바 없고 태평성대를 이뤄, 많은 여진인과 왜인들이 조선에 귀화했습니다. 그리고 한글창제 등 대왕이 이룬 문화적 업적은 이루 다 거론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이와 같은 대왕의 성취는 젊은 학자들이 중심이 된 집현전에서의 끝장 토론과 편전에서 대신들과의 끊임없는 토론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실입니다.(물론 한글은 몇 몇 측근과 비밀리에 연구하였습니다) 
그 만큼 토론을 으뜸으로 쳤던 세종의 리더십은 최고의 창의력과 응집력을 발휘했고,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 또 한 분. 세종대왕을 도와 조선시대 최고의 명재상으로 만인의 추앙과 존경을 받고 있지만 아들(들) 문제로 곯머리를 앓았던 보통 아버지 한 분을 더 소개하겠습니다. 그 분은 다름 아닌 세종시절 18년 동안 정승을 지낸 황희정승입니다.
황희는 첩의 몸에서 난 아들 황중생을 동궁전의 소천시(사환)로 근무토록 했는데 두 차례의 절도사건으로 아버지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얼 황중생의 절도에 연루된 본처 소생(적자) 황보신 역시 의금부지사로 근무할 때 말 한필과 베 두필을 훔쳐 자신의 첩에게 준 혐의 등으로 파직이 되고, 큰 아들 황치신(당시 호조참판)은 황보신이 파직되면서 국가에 반납하는 과전(科田)을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척박한 땅으로 바꿔치기 하다가 들통이 나 천하의 명재상 황희의 얼굴에 흙칠을 하였습니다. 이 일로 황희정승은 한사코 사직코자 하였으나 세종의 투터운 신임으로 결국 문종2년까지 관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의논하는 것이 다 사리에 맞아 조금도 틀리거나 잘못됨이 없었다’는 사관들의 평가를 받는 명재상이었습니다. 
 
얼마 전 필자는 서울의 모 추진위원회 사회를 의뢰받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회의장소에 도착하였더니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 세입자 등 수 십명이 회의장 앞을 봉쇄하고 있었고, 시끄러운 소란을 우려한 건물주는 추진위에 회의장소 대관불가를 통보한 다음 자물쇠로 잠궈버렸습니다. 추진위원회는 보름전에도 같은 안건으로 추진위사무실에서 회의를 개최하려다가 재개발반대 주민과 세입자들이 회의장을 점거하고 집행부 임원 등을 감금하여 수십명이 경찰에 연행된 전력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 번 회의마저 무산된다면 법적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집행부는 상당부분 동력(動力)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입장이었습니다. 필자는 집행부 및 재개발전문 변호사와 상의 끝에 당초의 사무실에서 10m정도 떨어진 도로위에서 회의를 강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회의장 출입구에는 회의장소 변경공고문을 써 붙이고, 회의장소에서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지점에서 의장님과 속기사, 그리고 일부 추진위원님들을 대형버스에 태우고 시간에 맞춰 회의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일반 추진위원들의 참석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고 장소변경 의결을 한 다음 모든 안건을 처리하고 회의를 끝냈습니다. 해산과정(버스에서 내리는 과정)에서는 반대론자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SBS, KBS, MBC 지상파방송 3사의 아침뉴스에 위 추진위원회 과정에서 벌어진 장면이 아나운서의 간단한 멘트와 함께 보도되었습니다. 
필자는 토론문화가 상실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고민해봅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는 난장판이 되고,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이 매 맞는 사회. 법률에만 근거해 판결을 내린 재판관이 모욕당하고, 추진위원장의 회의 주재권한이 전혀 존중되지 않는 이 현실을 타임머신을 타고 오신 세종대왕님께서 보시면 뭐라 하실런지요. 
김용석 편집위원(<A href="mailto:jskys1112@hanmail.net">jskys1112@hanmail.net</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