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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2009.12.27 21:20 입력 | 2009.12.28 09:32 수정

김용석 편집위원

아주 오랜 옛날 화성인(남성)들이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다가 우연히 금성에 사는 여인(금성인)들을 발견했습니다. 단 한 번 얼핏 보았을 뿐인데도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사랑을 느낀 화성인들이 우주여행 방법을 고안하여 금성으로 날아갔습니다. 다른 행성에서 다른 생활을 하던 화성인(남자)들과 금성인(여자)들은 말과 문화가 달랐지만 서로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며 함께 잘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지구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지구 환경의 영향으로 갑자기 그들은 이상한 기억 상실증에 걸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 출신이고, 따라서 서로 생각과 언어와 문화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로의 차이점들이 그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지면서 서로 충돌하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는 30여 년 동안 부부관계 상담소를 운영하며 수 만 쌍의 부부를 상대로 인간관계 세미나를 개최한 결과를 책으로 엮은 존 그레이박사의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도입부분입니다. 이 책은 전 세계에서 1,000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그는 남녀의 차이를 화성과 금성이라는 명칭의 비유로 풀어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레이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도 다르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정서적 욕구,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 도움을 청하고 받아들이는 방법 등에서의 차이가 너무 커서 부부가 서로 차이점을 인정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이미 갈등과 충돌은 피할 수 없다고 합니다. 
존그레이 박사의 보고서를 조금 더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남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능력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따라서 청하지 않은 조언을 들었을 때 그 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고 지시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천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여자들은 사랑, 개인간의 친밀한 관계, 대화, 아름다움 등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친구의 조언에 대해서 오히려 (관심에) 감사하고 대화(수다)를 즐긴다고 합니다. (참 많이 다릅니다.)
존 그레이 박사는 남자와 여자는 스트레스나 고민에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기분이 언짢을 때 좀처럼(특히 부인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대신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그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며, 해결책을 찾고 나서야 한결 기분이 좋아져 비로소 가족과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경우, 남자는 그 문제를 잊기 위해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는 등 뭔가 다른 일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낮에 있었던 복잡한 고민에서 벗어나게 되어 점차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면에 여자들은 낮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다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자기가 믿는 사람을 찾아가 자기 문제를 속시원히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감정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들은 훨씬 기분이 풀리게 됩니다.
문제는 낮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은 남편은 집에서 휴식을 원하고, 아이들 문제 등으로 하루종일 스트레스가 쌓인 아내는 오붓한 저녁시간에 남편의 따듯한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상황이 우리 모두의 가정에서 매일매일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 때 아내의 또는 남편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하려고 노력하시는지요. 
얼마전(12.10) 조합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현 시점의 재개발시장에서 3.3평방미터당 종전평가금액이 전국 최고수준인(국제업무지구 인근)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의 총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관리처분에 관한 소양이 웬만한 전문가 빰치는 수준이었고(투자자들이 많은 이유), 소송과 관련된 법률적 의미 역시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곤혹스러웠던 것은 효율적이고 원만한 진행으로 짜임새있는 총회를 진행코자 하는 집행부와, 각 안건에 대한 문제점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니 속에 있는 불만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게 몇 시간이고 들어달라는 여성 조합원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메우는 일이었습니다.
발언이 중복되고, 핵심없이 늘어지는 것을 제어하여 적절히 시간을 배분하려는 필자에게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연세 지긋한 여성조합원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오늘 대관시간이 몇 시까집니까? 열 두시가 되면 어떻습니까? 몇 달만에 모처럼 만났는데 시간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뭣 때문에 맘대로 말도 못합니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속에서 부부가 갖는 갈등의 모습이 총회장에서 재연되는 듯했습니다. 뭔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아내와 아내의 불평에 간단 명료하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대화를 끝내려는 남편.(직장에서 지친 남편은 쉬고 싶을 뿐입니다) 위 발언을 한 여성 조합원은 그 분대로 자신의 절실한 속마음을 이야기한 것이고 좋은 총회를 완성시키기 위한 필자의 노력 역시 정당한 것입니다. (사실 이럴 때 다수 조합원들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맞춰주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회의는 약간의 시끄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정리되어 갔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 조합원들도 상정된 안건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통과시켜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두 명의 조합원이 제기한 소송 때문에 관리처분을 변경하는 안건에 대한 나머지 조합원들의 불만인데 ‘여성 조합원들의 불만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암무튼 눈치껏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여성조합원들의 발언요구를 어렵게 어렵게 조율해 가면서 모든 안건의 심의를 마치고, 상정된 안건에 대해 표결과 결의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안건내용에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집행부의 불가피한 사정을 이해하고 각 안건은 압도적인 동의율로 가결되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 번 총회처럼 여성조합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총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총회현장에서는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심리적 차이와 변화를 순간순간 정확히 감지해서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용석 편집위원(blog.naver.com/jskys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