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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항 겪던 북아현2구역 재개발號 선장마저 잃었다: 설립인가 ‘취소’ 이어 조합장 업무상배임죄로 ‘구속’; 2010.08.11 18:16 입력 | 2010.08.13 16:09 수정

도시재생신문 hjeong25.rn@gmail.com

1000여 명의 사람들을 태운 배가 태풍을 만나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선장마저 잃게 됐다. 선장을 따르던 선원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한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태연하게 반응하며 새로운 항해를 꿈꾸고 있다면?
 
얼핏 보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는 이야기지만 이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에 딱 들어맞는 얘기다. 동의율 ‘뻥튀기’ 등의 잘못으로 지난 2월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됐던 것이 태풍을 만난 것이라면 조합장이 업무상배임죄로 법정에서 구속된 것은 난항을 겪고 있던 승선원에게는 선장을 잃는 가혹한 일임에도 취재 과정에 만난 이곳 조합원들은 의외로 ‘당연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11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지난달 변론종결 당시 ‘징역 5년에 추징금 5700만 원’을 구형받은 조합장 선 모 씨(60)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5700만 원’을 선고했다.
 
북아현2구역의 조합원 모임인 ‘북아현2구역 뉴타운 주민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등은 “재판부는 ‘피고의 죄질이 나쁜 데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선 씨를 법정구속시켰다”고 전했다.
 
선 씨는 지난해 말 부인이 정비업체인 (주)태형피엠씨의 직원 등과 짜고 친ㆍ인척을 OS요원 등으로 위장 취업시킨 뒤 근무하지도 않았음에도 임금 명목으로 조합 예산이 지출되도록 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렇게 빠져나간 조합 예산이 1억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공대위 관계자 K씨는 “담당 검사가 어찌나 세세히 조합장의 죄목을 열거했는지 속이 다 시원했다”면서 “검사 소견이라 자료를 받아 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변론 당시 선 씨는 “큰일을 하다 보면 작은 실수가 있기 마련”이라며 “일을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 만큼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그는 또 “선처해주면 북아현2구역을 역사에 남을 재개발 사업지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달 취재 당시 공대위 관계자들은 “검사 등은 ‘피고가 거짓말을 하며 말 바꾸기로 일관한 데다 죄질이 나쁘다’며 그의 선처 호소를 일축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대체로 선 조합장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결과에 대해 차분한 반응을 나타냈다.
 
한 조합원은 “조합원들 앞에서 엎드려 사죄해도 용서가 안 될 마당에 엉뚱한 소리를 하며 끝까지 조합원들을 우롱하는 조합장에 대한 실형 구형은 그의 업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조합원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조합설립인가 취소 이후에도 버젓이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조합 집행부는 이번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조합원들에게 부담이 되는 어떠한 행동도 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조합 측이 자행하고 있는 위법행위의 대표적인 사례로 법원의 업무 집행정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조합 설립 추인 등에 관한 동의서를 징구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이에 대해 서대문구청은 “항고심에서 재판부에 제출할 목적으로 징구하는 것은 가능하나 추후 해당 동의서가 공법ㆍ사법상 효력이 없음을 조합원에게 주지시켜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지도 공문을 조합에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공대위는 조합 측이 이 공문을 변조해 마치 구청이 조합을 지지ㆍ후원하고 있다는 오해를 살 만한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다. 공대위 관계자 K씨는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 고발 조치했으나 유야무야 되는 바람에 현재는 이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며 “추후 기회가 되면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공대위 측은 말을 아꼈다. K씨는 “내달 초부터 2심이 시작되는 만큼 현재로서는 여기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유사 사건의 경우 2심에서 뒤집힌 사례가 있어 노심초사(勞心焦思)하는 조합원들이 있지만 우리는 정의가 승리하리라 믿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패소해 상고를 하든지 조합이 패소해 상고를 하든지에 상관없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아현2구역은 올 2월 서울행정법원이 조합설립인가 취소 소송을 제기한 조합원 정 모 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지난 2008년 9월 시작된 조합 체제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고 이후 사업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현재 조합이 법적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소송이 끝날 때까지는 사업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아 우려 또한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조합 측이 최근 통장 등을 동원해 선 조합장에 대한 탄원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10일 아현역 근처에서 만난 북아현2구역 조합원 등은 “최근 구역 내에서 조합장에 대한 선처를 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받는 광경이 목격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 정통한 소식통도 11일 전화 통화에서 “재판부가 법정구속시킬 정도로 죄질이 나쁘다는 점을 인정한 데다 이미 대다수 조합원들로부터 신임을 잃은 조합장에 대한 탄원서라니 조합 측이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는 지를 방증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 시공자 선정 무효될까? 11일 선고 ‘분수령’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에 악재만 쏟아지면서 선 조합장 체제로의 사업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현 시스템 하에서 조합장을 좌우에서 보필하는 시공자와 정비업체가 모두 이번 사태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관계자들이 많다.
 
이는 11일 선고 당시 재판부가 조합장의 업무상배임 및 배임수재죄에 대해 이곳의 정비업체인 (주)태형피엠씨가 연루됐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데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지난해 11월 공소를 제기한 검사의 공소장 등에 따르면 선 조합장은 (주)태형피엠씨의 실장 인 모 씨로부터 ‘태형이 정비업체로 선정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함께 태형이 청구하는 용역비를 신속히 지급해주고 태형을 계속 정비업체로 유지시켜주는 등의 편의를 봐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공소장에는 당시 인 씨가 ‘믿을 만한 사람을 추천해주면 태형의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처럼 꾸민 뒤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도와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담당 검사는 인 씨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선 씨에게 지난 2007년 2월부터 2008년 9월까지 총 5700만 원을 송금한 것으로 판단했고 선 씨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게다가 12일 공대위 측이 제기한 ‘시공자 선정 무효’ 소송에 대한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라 그 결과에 관계자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무효 판단이 나오게 되면 북아현2구역 사업은 원점에서부터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아현2구역 조합은 지난해 8월 시공자선정총회를 열고 참가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단독 입찰한 삼성물산 건설부문-대림산업 컨소시엄을 시공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당시 단독 입찰의 효력 여부, 공사비 등을 문제 삼은 조합원들의 반발이 심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후에도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시공자와 관련된 불만 제기와 논쟁이 끊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북아현2구역에서는 지난해 시공자 선정 당시 입찰 과정에서 건설사들의 참가가 저조했고 3차례나 유찰된 끝에 삼성-대림사업단이 단독으로 총회에 상정돼 조합원 투표를 통해 시공자로 결정됐다.
 
당시 이를 놓고 ‘입찰 공고상 참가 자격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설정해 특정 업체만 참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제1차 입찰 공고(한겨레 09. 6.10)에 따르면 참가 자격은 ▲2008년 시공능력평가 순위 10위 이내 ▲2009년 1/4분기 부채 비율 300% 이하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업체로서 현장설명회에 참가한 업체 ▲위에 해당하는 업체 중 2개 이상 컨소시엄 구성 필수 등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것으로 제한됐다.
 
이후 계속된 2ㆍ3차 입찰 공고(국민일보 09. 6.20, 09. 7. 1)에는 종전 ‘10위권 이내’가 각각 ‘15위’와 ‘20위’ 이내로 완화됐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조건이 까다롭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 K씨는 “1차 입찰 공고만 살펴보면 도급 순위 10위 이내 업체 가운데 해당 조합이 내세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고 2개사 이상이 컨소시엄까지 구성해야 하는데 과연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건설사가 얼마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2차와 3차 공고 때 일부 조건을 완화했다곤 하나 그것이 사업 참여를 결정하게끔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종합해 보면 일각에서 제기하는 고의적인 유찰을 통한 특정 업체 선정이라는 의혹에도 충분히 설득력이 더해진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북아현2구역 조합은 “시공자 선정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3회 유찰돼 그 후 과정 역시 법을 준수해 진행했다”며 “일단 선고 결과가 나와 봐야 추후 대응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공대위 관계자 J씨는 “시공자와 관련된 문제 제기가 적지 않았던 데다 상당수 조합원들이 이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 조합원들의 염원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곳 조합원들은 올 초 취재 당시 “조합 설립(창립총회 08. 4.30 인가 09. 3.27) 이후 사업비가 1000억 원 가까이 늘어났다”며 “공개경쟁입찰로 시공자를 다시 뽑아 사업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북아현2구역의 사업비는 건축계획 변경 전 4058억5300만 원에서 변경 후 5017억74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 북아현2구역 조합 관계자는 “물가 상승분, 과거 포함되지 않았던 부분을 추가로 계상한 부분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늘어난 게 아니다”라며 “1000억 원 증가 관련 안건은 작년 총회 때 부결됐던 사안으로 이미 분양 안내서를 통해 해명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조합은 조만간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할 것이며 이사회의 결과에 따라 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검사가 밝힌 배임수재 액수 등에 비춰 볼 때 조합장이 선고받은 형량은 과하다”며 “조합장 개인적으로는 항소할 것으로 보이며 조합은 현재 ‘정비업체 직원의 개인 비리에 조합장이 억울하게 얽힌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적절하게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합장을 보필해온 한 사람으로서 이번 판결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공무원에 준하는) 조합장으로서 도의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법률적으로 중형을 받을 만한 행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