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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영 재건축] "조합원 물러나라" 시위 조장하는 조합: 2009.10.07 17:31 입력 | 2009.10.19 23:48 수정

반대 목소리 잠재우려 외지인 매수, 시위 조장 
“범대위가 조합” 동조하는 주민 많아 분쟁 지속 
 
지난달 24일 오후.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었던 송파구 가락시영 범비상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관계자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는 “조합원들이 모인 범대위를 물러나게 하려고 조합이 외지인을 매수해 시위를 조장하고 있다”면서 “세상에 이런 조합이 어디에 있냐”며 전화를 끊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해 찾은 아파트 단지 내부는 시끌벅적했다. 주민 수십 명이 패가 갈린 채 서로에게 욕설을 하며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이 그늘막 아래 있던 한 무리의 여성들은 “조합원의 재건축 염원을 방해하는 범대위는 물러나라”면서 어깨띠를 두른 채 가두행렬을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여성은 확성기를 통해 “이는 대다수 조합원들의 뜻”이라 외쳤고, 뒤따르던 무리들은 이에 호응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이때 트럭을 타고 나타난 두 남성은 “저들은 조합원이 아니다”라며 “조합이 돈을 주고 동원한 자들로, 정비사업 현장마다 나타나 조합원 행세를 하는 ‘꾼’들”이라고 말했다. 그 중 한 명은 “대다수 조합원의 뜻을 기만하는 건 조합”이라면서 “이런 ‘쇼’까지 벌이는 조합에게 조합원들이 속지 말아야 한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자 양측이 더욱 격앙돼 서로를 비방하기 했고, 지지자들도 둘로 나뉘어 고성과 욕설을 주고받았다. 결국 현장에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소동도 잠잠해졌다. 
주변에서 만난 한 주민은 “나도 조합원이지만 도대체 왜 이런 소란까지 피워 가며 주민 간 불신을 조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오랫동안 살았던 이곳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선 더 이상 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은 “여기선 범대위가 조합이고, 조합이 비대위야”라며 “조합원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쪽은 범대위”라고 말했다. 여느 정비사업장과 달리 다수의 주민 지지를 얻고 있는 범대위의 세(勢)로 미루어볼 때, 본 정비사업장의 분쟁은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이에 본 정비사업장 내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본 사건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들어 보고 향후 전개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 봤다. 
 
 
범대위, “조합 방식대로 추진하면 사업성 없어” 
조합 업무 정지 가처분 본안 소송에서 승소 
 
지어진 지 30년이 돼 가는 가락시영아파트. 1ㆍ2차로 나뉜 이 아파트 단지는 세대수가 총 6600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로, 단일 아파트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 단지는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조합원이 조합 지지자와 이에 반대하는 범대위로 분열돼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지난달 24일과 지난 1일 두 차례 인터뷰를 한 범대위의 윤 모 위원장. 그는 24일 당시 있었던 소동의 한복판에서 트럭 위에 올라 조합의 ‘막무가내’ 식 운영과 기만행위를 성토했던 두 남성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조합이 말하는 대로 사업을 시행하면 조합원 누구도 새집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지난 2008년 4월에 조합이 승인받은 사업시행인가는 우리 단지를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설정했고, 그를 토대로 추진되는 지금의 방식은 추가 부담금이 과도한 데다 (초기보다) 사업성도 악화돼 조합원 가슴에 못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본 정비사업의 조합도 현재 ‘2종 일반주거지역’인 이곳의 용도지역을 ‘3종’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도지역이 ‘3종’으로 변경될 경우, 용적률 상한선인 300%를 적용해 40층짜리 아파트 8000가구 이상 짓겠다는 조합의 계획은 이미 수차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실제로 조합장 김 모 씨는 타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종 상향을 추진하면) 건폐율이 줄게 되고 층수를 다양화해 단지 내 스카이라인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녹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주거 환경이 많이 개선된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해당 방송사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조합원들의 추가 부담금 역시 1억 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주민이나 인근 부동산 업계의 기대감은 높은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윤 위원장은 “조합이 건설업체들과 결탁해 막강한 파워를 앞세운 채 방송을 이용, 조합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면서 “조합장 말대로 추진하면 본 정비사업은 사업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에 따르면 본 정비사업의 사업비는 이미 3조 원을 훌쩍 넘었고, 조합원 1가구당 추가 부담금도 3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조합 측이 지난 2007년 7월 총회에서 통과시킨 ‘사업시행인가’ 안건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한 결과라는 게 윤 위원장과 범대위 측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결국 범대위는 이를 무효화하기 위해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30일 ‘조합 업무 정지 가처분 본안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 활력을 얻은 상태다. 
현재 범대위 측은 오는 11일에 이에 대한 주민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조합과 얽힌 다른 소송에서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윤 위원장은 “조합 업무 정지 가처분 본안 소송에서 승소했기 때문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소송에서도 우리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조합원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다짐했다. 
 
 
범대위, “우리가 용도지역 변경 추진했다” 
조합에 승소 ‘유리’…심의 등 난제 남아 
 
현 시점에서 본 정비사업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는 ‘용도지역의 종 상향 여부’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반적인 견해다. 얼핏 보면 조합과 범대위 모두 지금의 ‘2종 일반주거지역’을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하려는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양측은 이를 놓고 심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이유는 ‘종 상향’ 의제를 선점하는 쪽이 향후 본 정비사업장 내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황상 미루어볼 때, 실질적으로 이 어젠다를 선점해 제시했던 쪽은 범대위. 윤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업무 정지 가처분 판결을 받은 후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부분에 대해 치유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종 상향 문제를 거들고 나왔다”며 “지금까지 범대위가 추진했던 일을 마치 조합이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게 문제”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종’을 전제로 사업을 추진하던 조합이 업무 정지 판결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범대위 측이 주장하던 ‘용도지역 변경’ 카드를 자신들의 것인 양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 
윤 위원장은 이어 “요즘 조합 및 건설업자가 고용한 일명 ‘자원봉사단’이라는 여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단지를 돌면서 ‘업무 정지 가처분을 풀라’며 떼를 쓴다”면서 “그들은 업무 정지 가처분을 풀어야 ‘3종’으로 갈수 있다고 현혹하면서 주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지만 종 변경은 업무 정지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조합 측이 최근 징구하는 동의서와 종 상향 문제는 무관한 것이다. 범대위 측이 말하는 ‘업무 정지 가처분’은 지난 2008년 4월 1일 취득한 사업시행인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윤 위원장은 “우리 조합원들의 성숙된 의식을 믿고 있다”면서도 “노파심에 강조하고자 한다”며 “절대로 속지 말라”고 누차 당부했다. 
용도지역을 ‘3종’으로 변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자 윤 위원장은 “‘2종’으로 취득한 사업시행인가를 반납한 후 조합원 동의를 얻어 서울시에 신청해야 될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범대위에서는 또 “‘3종’으로 종 상향을 추진하면서 1차 아파트 15평형에 사는 조합원들이 (새로 건립되는) 33평형으로 입주할 때 무상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조만간 제시할 것”이라며 조합원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범대위 관계자는 “지난 2003년에 ‘3종’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을 조합이 ‘2종’으로 바꿔서 추진하면서 사업이 삐거덕거린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조합이 사업의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에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얘기. 
이들의 주장과 정황을 종합해 보면 현 상황은 범대위에게 여러모로 유리한 형국이다. 그러나 ‘승소’란 호기를 틈타 종 상향 움직임을 본격화할 것이란 의지를 밝힌 범대위의 앞날도 순탄치 만은 않을 전망이다. 
최근 발표된 서울시의 9ㆍ14 대책에도 불구하고 용도지역 변경은 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사항이라 아직 실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는 데다 본 정비사업의 종 상향이 강남구 개포 주공이나 강동구 둔촌 주공 등 다른 2종 아파트 단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야 되기 때문이다. 
 
 
조합, 조합원의 정보 공개 요구 ‘묵살’ 
무자격 건설사엔 ‘조합원 명단’ 제공? 
 
한편 해당 조합이 조합원에게 제공해야 할 정보 공개 요청은 묵살한 채 외려 자격이 없는 건설업체들에겐 이를 제공했다는 주장도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범대위가 적법한 절차를 밟아 임시총회를 개최하기 위해 조합에 조합원 명부를 요청했지만 조합은 ‘묵묵부답’이었다는 게 논란의 시작이었다. 
범대위 측은 “구청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 임시총회를 열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조합 측 지지자들이 구청에 찾아가 ‘정보 공개를 하면 안 된다’며 난동을 부렸고, 이 때문에 구청도 (어쩔 수 없이) 항소해 이마저 무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범대위에 따르면 조합 측은 조합원 명부 공개 불가 이유를 “중요한 정보를 함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조합 측이 해당 정보를 자격도 없는 건설업체들에게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범대위를 주축으로 하는 조합원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이에 대해 범대위 관계자는 “조합원들로 구성된 범대위 측엔 주지 않는 정보를 본 정비사업과 전혀 무관한 3개 건설사한테는 내 주었다”며 비난했다. 
 
 
계약 맺지도 않은 건설사가 사업 망쳤다? 
“그런 업체와 결탁한 조합 해체돼야” 
 
한편 본 정비사업을 10년 이상 표류하게 만든 장본인이 조합과 정식으로 계약도 맺지 않은 건설업체들이라는 주장도 제기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범대위 측 자료에 따르면 본 정비사업장에 들어와 있는 건설사는 모두 3곳. 국내 굴지의 H건설, S물산, H개발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합동사업단’으로 불리며, 3사 간 일종의 연대를 맺어 조합과 결탁한 상황이라는 것이 범대위 주장이다. 
범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3개사는 지난 1999년부터 본 정비사업장에 개입해 추진위(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당시 추진위원장이 말을 듣지 않자 한 건설업체가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싸우다가, (결국 업체끼리 합의해) 조합원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본 정비사업장을) S물산 40%, H건설 30%, H개발 30%씩 나눠 먹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이들 3개사는 조합과 정식으로 계약도 체결하지 않았고 “용도지역을 ‘3종’으로 변경할 수 있으니까 (이에 대한) 동의서를 내 달라”고 하면서 우편물을 발송한다든지 조합원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이들의 개입 강도가 더욱 세져 범대위 운영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윤 위원장 등의 하소연이다. 특히 조합과 건설업체들이 일당을 주고 동원한 사람들이 “변경 동의서를 내라”, “업무 정지를 풀어라”, “범대위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게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심지어 이들은 범대위가 걸어 둔 플래카드를 뜯어낸 뒤 불법 홍보물을 설치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마저 연출하고 있다는 게 주변에서 만난 주민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인터뷰 말미에 윤 위원장은 “(이들 업체들이) 과거에 (조합과) 가계약을 맺었던 업체는 맞다”면서도 “하지만 그들은 초기 방식대로 사업 시행 시 얻게 될 이득이 적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자신들을 (협력 업체로) 선정하기 위한 총회를 스스로 무산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조합에서 (종 변경에 대한) 동의서를 징구하다가 도저히 징구가 되지 않으니까 조합과 계약도 하지 않은 이들에게 변경 동의서를 받아 달라고 위탁을 한 것 같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