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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으려는 조합 Vs 뚫으려는 반대파, 그곳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2009.12.02 10:04 입력 | 2010.01.09 20: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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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아수라장이 된 임시총회 현장을 경찰 관계자가 통제하고 있다. 
 
“현 시간부로 용역(업무를 맡은 경호원)들 밖으로”, “안 나가면 업무 방해로 체포할 것입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 관계자의 이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던 임시총회 현장은 일순간 잠잠해졌다. 이제껏 주도권을 잡고 있던 조합 측 사람들은 침묵했고, 그들의 표정에는 허탈감이 가득했다. 반면 수적 열세에 조합 측이 고용한 100명이 넘는 경호원들의 분위기 눌려 있던 총회 발의자(아현3구역 재개발 입주자 모임ㆍ이하 아재모) 측에선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박수갈채도 쏟아졌다.
지난달 24일 오후 6시 53분,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의 한 웨딩홀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곳에서는 오후 7시부터 아현뉴타운 제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이하 아현3구역)조합의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 임원을 해임하기 위한 임시총회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를 막기 위해 조합 측 사람들이 일찌감치 총회장을 점거하면서 아재모 측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아재모 측의 총회장 접근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으려는 조합 측과 이를 뚫고 어떻게 해서든지 총회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재모 측 사이의 줄다리기는 점차 조합 측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조합 측이 ‘경호원’이라는 창과 조합원 ‘명부’라는 방패를 쥐고 있었기 때문.
총회장 대관을 비롯해 오래전부터 이날 총회를 준비했던 아재모 측은 사실상 총회장 출입구 근처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계속됐다. 여기저기서 욕설과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마저 벌어지면서 총회장 출입구 쪽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아현3구역 조합원들, 취재진, 경호원, 경찰 등이 한데 어우러져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고, 현장은 출동한 경찰도 통제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그러던 분위기를 바꾼 것이 바로 경찰 관계자의 경호원 해산 명령이었다. 경찰의 해산 명령에 그때까지 출입구마다 4~5명씩 서 있던 경호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필사적으로 아재모 측의 출입을 저지했던 조합 측 사람들은 공격 무기인 ‘창’을 잃고 수세에 몰리게 됐다. 반대로 ‘공권력’이라는 든든한 창을 얻게 된 아재모 측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총회 참석자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동시에 총회장 안으로 하나 둘씩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양측 엇갈린 주장만…증거 확보 총력전
조합, “총회 무효” vs 반대파, “끝났다”

 
하나의 난관을 뚫었음에도 총회는 제시간에 열리지 못했다. 오후 7시를 넘긴 상황에서 총회장 출입구 근처에서 조합 측 사람들과 아재모 측 사람들 간의 승강이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조합의 사무차장인 송 모 씨는 “애당초 조합원 신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반대파가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호원들을 고용한 것”이라면서 “조합 집행부를 와해시키기 위해 조합원 명부도 없는 상황에서 총회를 개최한 것인 만큼 이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아재모 관계자는 “조합 측에 명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일일이 발품을 팔아 가며 조합원들에게 서면결의서를 받았고, 총회에 직접 참석하고 하는 사람들은 별도의 신분 확인 과정을 거친 만큼 문제 될 게 없다”고 응수했다.
이렇듯 엇갈린 주장을 펼치던 양측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인 듯 서로 캠코더와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하는 데 총력전을 기울였다.
한 조합 관계자가 총회 참석자들의 신분을 확인하던 아재모 측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하자 한 여성이 손으로 렌즈를 가렸고, 그가 이를 제지하기 위해 그 여성을 밀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어딜 만져”라며 소리를 질렀고, 또 다른 아재모 관계자가 이에 동조하면서 성추행 논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논쟁의 중심에 있던 당사자는 “성추행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반대파가 조합원들의 신분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던 것일 뿐”이라며 억울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하지만 ‘성추행’이란 단어가 오가자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소란은 옆에 있던 경찰이 “물러나라”며 조합 측 사람들을 제지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진정됐다. 이로써 총회 절차상의 문제점을 찾아내 공격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던 조합 측으로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게 됐다. 총회 개최를 저지하려던 조합의 신 모 차장은 “저렇게 하면 조합원이 아닌 사람도 (총회장에) 들어갈 수 있지 않나”라며 “신분 확인도 거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조합 집행부의 목이 날아가게 됐다”며 절규했다.
그러자 같은 조합원으로서 이웃이기도 했던 자의 절규에 안쓰러움을 느꼈던 탓인지 아재모 측의 한 남성이 “다 끝났잖아. 이제 그만해”라며 그를 구석으로 데려갔다. 이를 지켜보던 조합원 김 모 씨는 “뭐가 끝났냐. 발의자 측이 신분증도 확인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총회장으로 들여보내고 있지 않나”라며 “성원 보고가 총회의 정당성을 뒤흔들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성원 채우기에 급급한 저들(발의자 측)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한 여성 조합원은 “구속된 조합장을 비롯해 조합 집행부는 불쌍한 조합원들을 등쳐 먹었다”면서 “진작 그만뒀어야 했던 인사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그들의) 해임을 위한 총회를 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지금까지 방해한 것도 모자라 총회장까지 몰려와 끝까지 훼방을 놓는 이유가 뭐겠는가”라며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밥그릇을 놓지 않으려는 속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정족수 과반으로…조합 집행부 ‘해임’
사업 사실상 중단…“책임 묻자” 움직임

 
간신히 열린 총회는 이후 일사천리로 조합 집행부 해임 안건을 상정해 의결했다. 아현3구역의 총 조합원 수는 2301명. 이 가운데 안건 의결에 필요한 의사정족수인 과반수는 1151명이다. 하지만 이날 발의자 측이 확보한 서면결의서는 1181장에 달했고, 서면결의에 의한 동의 없이 현장에 직접 참석해 표결에 참석한 34명을 포함해 총 1215명의 의사정족수가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해임안 처리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마칠 수 있었다는 게 임시총회 발의자 대표 구 모 씨의 전언이었다.
해임안이 통과되면서 조합장 유 모 씨를 비롯한 조합 임원 전원이 해임됐다. 이에 따라 아현3구역은 현재 조합 집행부가 사라진 셈이 됐고,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될 때까지 모든 사업 절차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조합장이 얽힌 비리 사건 등으로 지지부진했던 아현3구역은 이날 임시총회의 적법성을 두고 해임된 조합 집행부 측과 총회 발의자 측 사이에 치열한 법적 공방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된다.
구 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발의된 총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방해가 도를 넘었다”면서 “이에 대해서도 별도로 소송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 씨는 “그동안 조합원들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했던 데 대한 반성의 기미를 보여도 모자랄 판에, 끝끝내 상황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간 전임 집행부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 A씨는 “어렵게 성원을 채워 안건을 통과시킨 총회인 만큼 ‘업무 방해’에 대한 법적 책임부터 물을 것”이라면서 “우리 구역에 대해 주변 아현2구역 등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틀’을 만들어 간다는 심정으로 사업 정상화에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임시총회로 해임된 조합 집행부에 대해 민ㆍ형사상의 책임을 묻자는 주장이 나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조합원 B씨는 “이번 임시총회 과정상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앞으로 벌어질 업무 마비와 그로 인한 사업 지연을 걱정해야 한다”면서 “발의자 측과 조합 측의 주장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중재하고 사업 정상화를 원활히 추진할 수 있는 주체가 실종된 듯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발의자가 시공사 관계자가 참석해 이번 임시총회로 인한 착공 지연 등으로 늘어나게 될 조합원 부담금 등에 대해 설명한다고 했으나 시공사 관계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면서 “이번 분쟁으로 신속한 사업 진행을 바라던 대다수 조합원들의 바람은 물거품이 됐기 때문에 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합, ‘서면결의 철회서’ 받아…의사정족수 미달?
“총회 무효” 주장 제기…‘명분’ or ‘절차’ 논쟁

 
일각에서 이번 임시총회가 무효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총회 의결로 해임된 조합 집행부뿐만 아니라 그날 총회에 참석했던 타 사업장 관계자들과 아현3구역에 정통한 소식통 등이 공통으로 제기한 것으로, 이는 추후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자문에 응한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그날 총회의 성원은 채워지지 않았다”면서 “발의자 측이 서면결의를 통한 참석자로 밝힌 1181명 가운데 230명가량이 조합 측에 철회 동의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해임안 가결에 필요한 의사정족수는 충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조합 관계자는 “해임에 동의했다가 철회한 239명의 서면결의서가 반영되지 않는 등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면서“ 법원의 판단을 끝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 C씨는 “총회 발의자 측에 ‘조합 측이 서면결의 철회 동의서를 230장 넘게 받았다’고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구 씨 등이 이를 무시했다”면서 “구 씨 등이 임시총회를 근거로 법원에 조합 집행부에 대한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 방침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법원에서 절차상의 하자를 문제 삼을 게 뻔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이 외에도 “총회 발의자 측이 조합원들의 신분증을 확인하지도 않고 총회장에 들여보냈다”, “조합원이 아닌 사람이 총회장에 들어가 조합원 행세를 하며 투표에 참여했다” 등의 확인되지 않은 설이 난무해 향후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에 대해 한가람법률사무소의 조창혁 변호사는 “서면결의서를 제출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신원만 파악한 채 입장을 시켰고, 직접 참석해 표결에 임한 30여 명의 사람들은 일일이 신분증을 통한 신원 확인 과정을 거쳤던 만큼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 S씨는 “이번 사건을 통해 향후 법을 적용하는 데 ‘명분’과 ‘절차’ 가운데 어떤 게 우선시돼야 하는 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까 한다”며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양쪽 모두 법원의 판단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됐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대해 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명분’이 먼저냐, 아니면 ‘절차’가 먼저냐를 따지는 해묵은 논쟁이 재연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 법률 전문가는 “이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이전투구를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라면서 “법에서의 명분은 곧 정당성이다. 법이 특정 사안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져 옳은 쪽의 손을 들어주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도시정비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포괄적으로 다뤄야 하는 만큼 ‘절차’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사안의 경우, 조합장의 비리 등으로 정당성은 발의자 측에 있는 만큼 이를 놓고 별다른 분쟁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 외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절차’를 놓고 양측이 엇갈린 주장을 펴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법률 전문가는 “법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요한 잣대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논쟁이 끊이질 않는 것은 결국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재판부를 상대로 ‘판단을 잘못 내렸다’며 항의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불만이 있는 쪽이 의지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절차’상의 하자”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이번 임시총회 의사정족수의 충족 여부를 놓고 조합 측과 발의자 측의 사활을 건 법정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동시에 법원의 판단에 따라 양측의 운명이 판가름될 것이란 점, 그로 인한 파급효과가 인근 사업장으로 어떻게 전이될 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