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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정비사업장에 강림하신 하나님?: 2009.09.16 17:24 입력 | 2009.10.19 23:53 수정

재개발 정비사업장에 강림하신 하나님? 
‘어느 곳을 굽어 살피시나이까’ 
 
“아무리 동상이몽이라지만 이런 경우가 없다”라며 혀를 차는 R씨(서울 중랑구ㆍ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 총무이사)의 모습에 일부 재개발 정비사업장에서 이른바 ‘알박기’를 하며 사업을 지연시키는 종교 시설 문제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지난달부터 지난 9일까지 두 달에 걸쳐 여러 재개발 정비사업장을 취재한 결과, 그냥 간과하기엔 그 심각성이 큰 것 같아 재개발 정비사업장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종교 시설’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봤다. 
 
 
분쟁 지역 가운데 ‘교회’가 특히 많아 
피해는 조합원ㆍ신도 몫…“마이 갓” 
조합과 줄다리기, “목사만 배 불린다” 

 
건축법이 정의하고 있는 ‘종교 시설’은 종교집회장(교회ㆍ성당ㆍ사찰 등 제2종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과 그곳에 설치된 납골당 등을 말한다. 이러한 종교 시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역시 교회다. 수가 많기 때문인지 그만큼 문제도 많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사찰의 경우 도심에 있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물고, 성당의 경우엔 교구별로 이른바 ‘천주교회유지재단’이 부지를 통합적으로 관리해 분쟁의 소지가 적다. 반면 교회는 내규를 두어 동일 교단 간에는 일정 거리 이상을 침범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신축 부지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할 때 재개발정비사업으로 인한 교회 이전 문제는 해당 교회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부 사업장에서 ‘생존권’을 앞세워 정비사업의 조합 혹은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이번 취재 결과 밝혀졌다. 일례로 서울시 마포구의 한 정비사업장의 경우, 정비업체 사장이 해당 사업 구역 내 종교 시설의 명의를 본인으로 바꾼 뒤 조합원 행세를 하며 조합 측을 상대로 ‘버티기’에 나서는 등 횡포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정비구역 지정 시 이해관계자들은 ▲사업 구역 내 종교 부지를 조성할 것인지, ▲구역 밖에 대체 부지를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존치시킬 것인지 등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이때 관건은 기존 부지 면적에 비해 신규ㆍ신축 부지를 얼마만큼 책정하느냐다. 건축물의 경우 통상 건축비로 보상을 하는데 조합 등이 건물을 새로 지어주는 방법도 있다. 
 
기존 시설을 존치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쉽게 도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정비사업의 경우 대지 면적의 확보가 사업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사업 구역 내에 기존 종교 시설을 유지하는 건 여러모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비사업장에서는 사업 구역 밖에 대체 부지를 마련하는 선에서 합의를 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일부 정비사업장에서 보상비를 낮추려는 조합 또는 추진위 측과 이를 최대한 높이려는 종교 시설 간 이견이 커 분쟁으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정비사업은 지연될 수밖에 없고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 마찬가지로 해당 종교 시설의 신도들 역시 갈등으로 인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배를 불리는 건 해당 종교 시설의 주인 아닌 주인, 교회의 경우엔 해당 교회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이에 속한다. 예를 들면, 조합 측으로부터 보상비를 챙긴 교회의 목사가 해당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 교회를 짓거나 임차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교회를) 이전해 버리면 원래 있던 신도들은 자연스레 이탈하게 되고 결국 교회로 귀속된 보상비는 목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는 얘기다. 
 
 
추진위원회 단계서 섣부른 약속도 문제 
종교 시설은 이미지 실추돼 도덕성에 흠집 
사업 지연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 몫 
 
추진위 단계는 정비사업 시행에 필요한 조건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향후 변수에 따라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기다. 
 
하지만 사업 추진 ‘속도’에 급급한 나머지 추진위 단계에서 역내 종교 시설과 섣불리 합의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시 광진구의 한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해당 정비사업의 추진위는 사업 구역이 협소한 점을 들어 인접 부지를 편입해 여기에 종교 시설을 들어서게 하는 데 종교 시설과 합의했다. 
 
그런데 추진위가 인접 부지를 매입하는 데 실패하면서 기존 구역을 기준으로 구역 지정이 이뤄졌다. 그것은 결국 종교 시설 측과의 약속을 깨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후 관계가 틀어진 양측은 지난한 법정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해당 추진위뿐만 아니라 종교 시설 양측 모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보통 종교 시설은 사업 구역 내 주민들이 오랫동안 함께 이용하면서 지역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종교 시설이 이권에 얽히면서 종교 시설은 그 이미지에 먹칠을 할 수밖에 없고, 추진위 측 역시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돼 막대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면목동 J구역 사업장서 교회 ‘횡포’ 가관 
브로커 개입해 싸움 붙여…갈등만 더 커져 
결국 법원으로, ‘손’ 놓고 ‘넋’ 잃은 조합원 
 
<IMG src="/wysiwyg/PEG/W_1253089391.jpg"> 
서울 면목동의 한 교회에 나부끼고 있는 플래카드. 
 
재개발정비사업장에서 종교 시설이 문제가 되는 사례 가운데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의 J구역 정비사업(이하 J사업) 조합과 S교회의 갈등은 이러한 문제의‘백과사전’ 격으로 볼 수 있어 관심을 끌었다. 
 
J사업 조합은 추진위 시절 총회 장소로 S교회를 이용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사태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추진위 시절 S교회 측은 “왜 교회 지분에 대한 협의는 하지 않느냐”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선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데 그쳤기 때문. 당시 추진위는 “현 단계에서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입장을 전했고 갈등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추진위 승인(2006년 3월) 이후 기본계획 변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S교회 측으로부터 이런저런 불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구역 지정 확정 고시(2008년 8월)를 기점으로 양측의 갈등은 본격화하게 된다. 
 
특히 조합 설립 인가가 떨어진 2008년 11월까지 약 3개월간 S교회의 횡포(?)는 그 정도가 심해졌다.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구청 ‘흔들기’에 나선 S교회는 “교회와 협의되지 않으면 조합 설립 인가를 내 주지 말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S교회 측 관계자라는 L씨는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무시한 처사”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이에 J사업 조합의 총무이사 Y씨는 “우리가 보기엔 교회 관계자가 아니라 브로커”라며 “그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조합과 교회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계속 이대로라면 법원의 판결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해당 사업장을 비롯해 인근 지역을 취재한 결과 이 사업장을 필두로 이 일대 유사한 사건에 일명 ‘브로커’가 개입해 조합과 종교 시설 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특히 J사업의 경우, L씨가 사업 구역 내 S교회 측 협상 대리인처럼 행세하며 조합과 교회 양측을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싸움을 붙이고 그로부터 떨어지는 이득은 자기가 챙기려는 속셈이 아닌가란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S교회 “감 놔라 배 놔라” VS 조합 “어쩌란 말이냐” 
목사가 욕설에 폭행까지…“자질이 의심돼” 
조합 제안 번번이 거절…진정성은 어디에? 
 
<IMG src="/wysiwyg/PEG/W_1253089419.jpg">
교회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에 적힌 ‘입지 보장’이란 문구(上)가 과연 누구를 위한 외침인지 자문하게끔 만든다. 
 
Y씨가 제시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S교회의 요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뀌었고, 조합은 그때마다 합의를 이끌기 위해 노력했으나 합의는커녕 갈등만 더 커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S교회는 2006년만 하더라도 재개발 사업에서 교회 지분에 대한 언급이 빠졌으니 이를 시정하라는 식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2007년 3월, 사업 구역 내 교회 부지를 다른 부지와 바꾸거나 부지를 팔고 그 돈으로 새로운 부지를 장만한 뒤 건축비를 보상할 경우엔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게 Y씨의 주장이다. 그런데 같은 해 7월, S교회의 담임목사 D씨는 신도를 대동한 채 추진위 사무실로 찾아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위원장 등에게 욕설ㆍ폭행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이에 대해 Y씨는 “목사로서의 자질과 전직이 의심스러운 인사”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2007년 10월엔 새로운 교회 부지와 진입로를 제공하겠다는 추진위의 제안에 “기존 부지보다 면적이 작고, 도로 폭도 좁다”며 반대했다. 이때부턴 S교회 측이 “교회와 협의 없이 추진위 독단으로 맹지를 교회 부지로 책정했다”는 등 비난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는 게 조합원들의 전언이다. 
 
이에 같은 해 11월 추진위 측은 부지와 도로 폭을 수정해 교회에 제시했다. 그러자 S교회는 “다른 대안을 마련하라”며 이마저 거절했다. 교회가 요구한 대안은 사업 구역 내 알짜배기 땅인 도로변에 교회 부지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추진위 측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 결국 추진위는 교회 측이 요구한 도로변 맞은편에 경매로 나온 건물을 낙찰 받은 뒤 신축비까지 충당하는 조건(약 24억 원 상당)을 제시하게 된다. 
 
S교회의 어깃장은 이때부터 절정에 달했다. 이 제안마저 거절한 것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추진위 측은 협의 매매를 하거나 현금 보상을 통해 해결하자며 갈등의 해결을 촉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지난 7월 S교회 측이 조합에 보낸 내용증명에 따르면 “교회는 협의 매매를 원한 바 없다”면서 “현금 보상의 경우에도 그 필요성을 못 느끼나 굳이 한다고 해도 조합이 제시한 액수로는 부족하다”며 일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Y씨는 “(조합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썼다”면서 “이젠 법원의 판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한탄했다. 
 
한편 취재 과정에서 J사업 조합원들로부터 들은 말들은 S교회의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에 따르면 S교회 측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얘기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보상액으로) 3.3㎡당 5천만 원 정도면 양보하겠다” ▲“정비업체를 (교회 측이 추천한) 00로 해 달라” ▲“신축 아파트 한 라인 정도면 만족한다” ▲ “50억 원까진 생각하고 있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대부분 조합원들의 주장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기엔 무리가 있다. 사실 확인 차 S교회 담임모사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교회 관계자는 “안 계시다”며 전화를 끊었다. 사실 확인에 한계가 있으나 이제껏 S교회가 보여줬던 언행을 감안하면 전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J사업 조합이 생각하고 있는 보상액은 최대 24억 원에 달한다. 해당 정비사업의 사업성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순수익 규모를 고려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S교회를 찾아 둘러본 결과, 말 그대로 ‘맹지’에 있는 데다 역사가 길지 않아 신도 수 역시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왜 조합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할까’란 의심이 들었다. 
 
게다가 인근 시세 등을 조사한 결과 24억 원 정도면 대로변에 번듯한 새 건물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란 미명 하에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 S교회의 행태는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J사업 조합 사무실에서 Y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내 동대문구 제기동의 K구역 정비사업장 사례가 생각났다. 그곳에서도 J사업과 같은 분쟁이 있었으나 관할 구청의 중재로 추진위와 교회 측이 원만히 타협해 지금은 원활하게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물론 사업 구역 내 종교 시설의 위치, 사업성, 관계 당국의 적극성 등의 조건이 달라 이 사례를 그대로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이 다르지 않은가. 이에 대해 Y씨가 했던 “(S교회 목사여) 순결한 척 하지 말라”는 말과 한 교회 앞에 걸린 플래카드에 적힌 “하나님은 00교회에 존치를 원하신다”는 글귀가 오버랩됐다. 재개발 사업장에서 웬 하나님 타령인가. 설령 계신다 해도 정말 그걸 원하실까. 문제는 바로 사람이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