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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직무 대행자’는 ‘대리인’이지 조합장 아니다: 2009.11.04 15:04 입력 | 2009.11.04 22:02 수정

조합장 ‘직무 대행자’는 ‘대리인’이지 조합장 아니다

 
‘직무 대행’이란 남의 직책이나 직업을 대신해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일이 정비사업장에서도 빈번히 발생한다. 특히 법원에 의해 변호사들이 조합장의 직무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조합장 직무 대행자는 조합원 혹은 이해관계자 간 분쟁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비사업장에게는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존재로서 분쟁을 중재 및 해결하는 등의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신 일 잘하라고 선임한 직무 대행자가 외려 ‘주인’ 행세를 하거나, 대행 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 자신의 이력에 보태려는 등 사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직무 대행자의 업무 범위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 역시 해묵은 과제라는 게 자문에 응한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맡긴 일이나 잘하지 공명심에 빠져 ‘주인 행세’

 
법원의 선임에 따라 분쟁을 겪고 있는 정비사업장에 부임하는 조합장 직무 대행자들은 의욕을 불태우며 해당 정비사업을 이끌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랑구 면목 제1구역 주택 재건축 사업, 서초구 반포미주아파트 주택 재건축 사업 등도 이러한 직무 대행자에 의해 사업이 추진됐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구역들이다.
하지만 일부 사업장에서는 직무 대행자가 마치 ‘주인’처럼 행세하거나 대행 기간 중에 공명심(功名心)에 사로잡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법원이 직무 대행자를 지정한 서울시 동대문구의 한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장의 경우, 조합장 직무 대행자로 부임한 변호사의 신통치 않은 ‘일 처리’로 인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외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9월 초, 이 사업장의 조합장 직무 대행자로 변호사 A씨가 부임할 때만 하더라도 조합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A변호사가 그의 부임 직전까지 해당 사업장을 수렁에 빠뜨렸던 분쟁을 해결해 사업이 원활히 추진되리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무너지는 데는 불과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A변호사가 직무 집행을 정지당한 전 조합장과 그에 맞서는 일부 조합원들을 중재하지 못한 채 외려 갈등을 조장하는 듯한 인상을 비추면서 리더십에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 G씨는 “직무 대행자가 개인적으로 뭔가 이루고자 한다면 직무 대행은 실패할 것”이라면서 “해당 사업장의 경우에도 직무 대행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조합원 B씨 역시 전화 통화에서 “A변호사가 우리 조합의 분쟁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직무 대행자는 가만히 앉아 300만 원의 월급을 타면 그만이지만,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늘어나는 사업비로 우리(조합원)들만 죽을 맛”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임 집행부 선출 총회 미루고 이권 개입 의혹도
“직무 대행자 보조자 역할에 그쳐야”

 
조합장 직무 대행자는 신임 조합장, 임원 및 대의원 선출 등 사업의 정상화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하지만 정비사업의 긴박성을 이유로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한다든지 갖가지 핑계를 대며 총회를 열지 않는 경우도 발생해 문제란 지적이 많다.
실제로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에도 직무 대행자로 선임된 변호사가 신임 조합장 선출은 뒤로 미뤄 둔 채 임대주택 의무 건립 규제를 피하기 위해 협력 업체를 선정하고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시킨 사례가 있다. 또 경기도 광명시의 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에는 조합장 직무 대행자가 갖가지 이유로 조합 집행부를 선출하는 총회를 미루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변호사가 직무 대행자로 오게 되면 조합원들 사이에 ‘사업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기는 게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일부 변호사들은 이를 악용해 정비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관리처분까지 마음대로 하려 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직무 대행자가 이권에 개입됐다는 의혹을 살만 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P로펌의 P변호사는 “조합장 직무 대행자는 신임 조합장을 선출해 사업을 정상화시키는 데 보조자의 역할을 하면 그만”이라며 “조합장의 직무 집행 정지 등으로 인해 사업이 꼬인 상태에서 그 밖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법률 전문가 G씨는 “직무 대행자의 역할은 사업 정상화를 위해 초석을 쌓는 것”이라면서 “사업이 올바르게 추진될 수 있도록 조언자의 역할만 하면 되지 협력 업체를 선정하는 등 향후 조합원들의 비용이 수반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재개발ㆍ재건축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변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법원의 직무 대행 요청을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합장 직무 대행자는 통상 재개발ㆍ재건축 경험이 적은 변호사들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직무 대행자로 부임했다가 아예 조합에 눌러앉는 일부 변호사들을 보면 마치 ‘개인적인 경험을 축적하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의구심까지 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애당초 법원이 조합장 직무 대행자를 선임할 때 ‘경력 몇 년 이상’ 등의 요건을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며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업무량에 비해 ‘많은 보수’도 문제란 지적

 
‘과다 보수’ 논쟁 역시 해묵은 이야깃거리 중 하나다. 보통 조합장 직무 대행자의 보수는 법원이 직무 대행자를 선정할 때 정한다. 이때 조합장 직무 대행자의 급여는 현(現) 조합장의 급여 수준이나 통상 월(月) 400~500만 원선에서 정해지는 게 관행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직무 대행자가 사업 정상화를 위해 조합장이나 임원 선출 등의 업무만 하는데 급여가 과다하게 지급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직무 대행자의 급여는 각 조합의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400~500만 원대 월급은 과다한 측면이 있다”면서 “조합에 상근하지도 않으면서 8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표준 정관이 정한 대로 이사들부터 대행
이사 자격 미달ㆍ거부 시 법원에 요구
대외적으로 유효하려면 변경등기해야

 
정비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 임원들이 사임ㆍ사망ㆍ질병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 일부 조합 임원이 비리에 연루돼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조합 표준 정관에는 조합장이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상무이사-이사 중 ‘연장자’ 순으로 조합을 대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고 있다.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조합 표준 정관 제15조 제6항에 따르면 ‘다음 각 호의 경우에는 당해 안건에 관해 (상근)이사 중에서 연장자 순으로 조합을 대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각 호는 ▲조합장이 유고 등으로 인해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조합장이 자기를 위한 조합과의 계약이나 소송 등에 관련되었을 경우 ▲조합장의 해임에 관한 사항 등을 말한다. 이는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조합 표준 정관 제16조 제5항과 제6항에도 명시돼 있다.
이와 함께 주택 재건축 정비사업조합 표준 정관 제17조에서는 ▲금고 이상의 실형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종료된 것으로 보는 경우를 포함한다)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2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 ▲법 또는 관련 법률에 의한 징계에 의하여 면직의 처분을 받은 때로부터 2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자 등 임원의 결격사유와 자격상실에 대해 정해 놓고 있다. 
여기서 임원이 결격사유에 해당하거나 선임 당시 그에 해당하는 자인 것이 판명된 때에는 퇴임해야 하고, 퇴직 임원이 퇴직 전에 관여한 행위에 대해서는 효력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조합의 이사들이 각 조합 정관에서 정하고 있는 자격 요건에 미달됐거나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경우, 조합은 법원에 조합장 직무 대행자를 선임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조합으로부터 직무 대행 선임 요청받은 법원은 자체 심사를 거쳐 조합장 직무 대행자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보통 공신력을 갖춘 변호사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법원의 결정으로 판시하기 때문에 결정문이 증명서가 된다.
법원이 조합장 직무 대행자를 선임해 주면 선임된 날로부터 내부적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효력이 발생되려면 조합이 해당 등기소에 변경등기를 거쳐야 한다.
민법 제52조의 2(직무 집행 정지 등 가처분의 등기)에 따르면 “이사의 직무 집행을 정지 혹은 직무 대행자를 선임하는 가처분, 그 가처분을 변경ㆍ취소하는 경우에는 주사무소와 분사무소가 있는 곳의 등기소에서 이를 등기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조합에서는 법원 결정에 항소하는 등 또 다른 갈등으로 번져 변경등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 법원이 조합장 직무 대행자를 선임했지만 비상대책위원회 측의 항소로 인해 아직까지 변경등기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직무 대행 업무 범위ㆍ내용 구체화해야
“본연의 업무 충실” vs “그게 뭔데?”

 
한편 조합장 직무 대행 선임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업무 범위나 내용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조합장 직무 대행 업무를 자신의 경험을 쌓는 데 활용한다든지,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사업 정상화에 소홀히 임한다든지, 조합장에 준하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직무 대행 기간을 고의로 늘리는 등의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법원으로부터 선임된 조합장 직무 대행자는 빠른 시간 안에 조합 정상화와 신임 조합장을 선임하는 등 ‘본연의 업무’에 전념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법원에서 조합장 직무 대행자를 선임할 때 그 업무 범위를 신임 조합장의 선출로 제한해야 하며, 더 나아가 임기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본연의 업무’가 모호해 이를 법제화를 통해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직무 대행자의 권한은 ‘가처분명령에 다른 정함이 있는 경우 외에는 법인의 통상 사무에 속하지 아니한 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통상 사무’라는 것은 현 사업 추진 단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사업의 정상화를 위해 신임 조합장을 선출하고, 선출된 신임 조합장이 다음 단계의 사업을 추진해야 된다는 것이다. 다만 직무 대행자가 신임 조합장을 선출하지 않은 채 사업 단계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P로펌의 P변호사는 “‘통상 업무’는 신임 조합장 선출 등 극히 기초적인 업무를 말한다”면서 “당초 법원이 조합장 직무 대행자를 선임해 줄 때 ‘몇 개월 이내에 조합장을 선출하라’는 내용을 정해준다면 이에 얽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그는 “법령으로 직무 대행 기간을 정하게 되면 그 기간 내 분쟁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또 다시 대행자를 선임해야 할 수 있으므로 이를 보완할 방법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또 “업무의 범위를 명시해 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조합(원)을 위한 길”이라면서 “아무리 공정한 변호사라고 해도 초심을 잃은 채 이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