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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안전진단, 무엇이 문제인가?: 2009.11.04 15:06 입력 | 2009.12.03 11:40 수정

재건축 안전진단,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달 13일 강남구청이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대한 현지 조사 결과 ‘안전진단’이 필요하다고 밝힘에 따라 ‘안전진단’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본보는 ‘안전진단’이란 제도가 지닌 문제점, 특히 관련 규제 완화 이후 집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부작용 등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다루어 보았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8ㆍ21대책 등 관계 법령이 개정되면서 안전진단 절차 등은 간소화해졌지만, 추진 주체가 관할 지자체로 바뀌면서 제반 비용 역시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문제 등의 갈등 요소가 몇 가지 지적됐다. 또한 선거를 생각해야 하는 지자체장의 경우, 포퓰리즘에 빠져 무리하게 안전진단을 추진할 가능성 또한 높아졌다.
이밖에 개정된 법령에 맞게 시ㆍ도 조례가 정비되지 않아 일선 지자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점, 지자체마다 제각각인 안전진단 신청 가능 연한 등 오랫동안 문제시됐던 부분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관할 지자체장에 권한 위임…부작용 우려
예산 부족으로 기간 지연ㆍ포퓰리즘 영합
관계 조례 미비로 일선 지자체 ‘우왕좌왕’

 
지난 2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지난 8월부터는 안전진단 및 정비구역지정의 추진 주체가 기존 조합 등 사업시행자에서 구청 등으로 바뀌었다. 기존에는 조합이 직접 협력 업체를 선정해 이를 추진했어야 했지만 이제 구청 등으로 그 역할이 넘어간 것이다. 이에 따라 규제 완화로 기대되는 효과 못지않게 부작용에 대한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먼저 재건축 사업을 앞둔 정비사업장들의 정비계획 수립 시기가 몰릴 경우, 그 비용을 관할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등이 감당하기 어렵거나, 예산 부족으로 안전진단 실시 기간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됐다. 지자체별로 그해에 사용할 예산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최소 1억 원가량 소요되는 안전진단 비용을 부담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따라서 관할 지자체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재건축 사업 추진을 등한시한다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지자체장이 안전진단의 추진 주체가 되면서 주민 투표로 선출되는 지자체장의 특성상 여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우려 또한 높다.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관계 법령이 정한 절차를 무시한 채 안전진단을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후 아파트 단지의 경우, 세대수가 많아 유권자가 수천 명에 달한다. 때문에 해당 지역의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굳이 안전진단을 까다롭게 해 ‘재건축’을 원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밉보일 필요가 없다. 이러한 경향은 선거를 앞둔 지자체일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치동 E부동산중개업소 소장인 유 모 씨는 “강남구청이 은마아파트에 대한 안전진단 실시를 결정한 배경을 두고 내년 지방선거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순 없을 것”이라며 이를 뒷받침했다.
법령 개정에 맞게 각 시ㆍ도 조례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있는 일선 지자체의 처지 역시 걱정거리다. 토지등소유자들의 동의를 얻거나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승인을 받은 곳들이 안전진단을 신청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방법과 절차에 대해 시ㆍ도 조례가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아 일선 지자체들은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진단이 예정된 아파트 단지들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몰릴 경우, 관할 지자체가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란 게 한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우리 구에는 강남권 재건축의 양대 산맥인 ‘잠실 주공 5단지’가 안전진단 대상인데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이 많다”면서 “비용에 대한 것은 관할 구청이 부담하도록 법령에서 정하고 있지만,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는 시ㆍ도 조례로 정하도록 돼 있어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전진단 실시 결과, 재건축 유지ㆍ보수 판정이 나올 경우 예산을 낭비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대문구청의 한 관계자는 “이미 예산안을 짜 놓은 상태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비용을 자치구가 부담하도록 법이 바뀌면서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라면서 “더욱이 안전진단에 1억 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만약 안전진단 실시 결과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게 되면 예산이 낭비되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일선 자치구들은 역내 재건축 단지들에 대한 안전진단 실시 여부는 자체 예산이 확보된 다음에야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서울시 조례가 개정돼 안전진단 비용 부담 방법이나 절차가 확정된 다음 행정 업무를 진행할 계획이라는 게 일선 자치구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아울러 토지등소유자들의 동의를 얻어 안전진단 실시를 요청한 경우에 해당 지자체가 안전진단 비용의 전액 또는 일부를 신청자에게 부담 지울 수 있게 만든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전진단 ‘비용’ 놓고 민ㆍ관 갈등 커져
전문가, “법 개정 불구하고 사업 지연”

 
위에서 언급했던 문제 가운데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자리매김한 것은 바로 ‘돈’에 얽힌 관할 지자체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이다.
갈등의 불씨는 정부가 제공했다. 정부가 안전진단에 드는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지난 2월 도시정비법을 개정하면서 그 권한과 비용 부담 주체를 지자체로 이관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안전진단에 대한 업무를 떠맡게 된 자치구에는 안전진단 비용이 확보돼 있지 않아 담당 공무원들 역시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송파구청의 한 관계자는 “예산 사정이 다른 자치구에 비해 월등히 좋다는 강남권 구청들조차 (안전진단에 필요한)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면서 “강남 지역에는 강남권 주택 수급의 핵심이랄 수 있는 ‘재건축’ 예정 단지들이 특히 많아 이에 얽힌 민ㆍ관 갈등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자체 예산 부족으로 인해 안전진단 시기가 임박한 일선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은 관할 구청 등이 예산을 확보할 때까지 사업 추진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태는 재건축 사업이 활발한 서울시를 중심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조속히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놔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자문에 응한 전문가 대부분은 “정부가 재건축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법을 개정했지만 (그것이) 외려 사업 지연을 야기했다”면서 “관할 구청이 예산을 확보할 때까지 사업 지연이 불가피한 만큼, 이것이 정부의 주택 수급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감안해 하루빨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예산 확보 여부 따라 희비 엇갈려
강남구 ‘싱글벙글’ㆍ송파구 ‘진땀’

 
한편 재건축 안전진단 비용을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법이 바뀌면서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예산)을 확보한 자치구와 그렇지 못한 자치구 내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구청은 은마아파트의 안전진단 비용으로 이미 2억 원가량의 예산을 편성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은마아파트는 3차례나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사업 추진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최근 안전진단 비용을 시장ㆍ군수 등이 부담하도록 법이 바뀌면서 안전진단을 신청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안전진단 비용에 대한 부담 주체가 확정된 지난달 은마아파트의 안전진단을 실시하기 위한 추경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그동안 은마아파트는 주민들의 비용으로 3차례나 안전진단을 실시했지만 통과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제반 비용을 구청이 지원함과 동시에 안전진단 기준도 완화되면서 은마아파트의 안전진단 통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송파구청은 안전진단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다른 자치구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관계 법령에 구체적인 절차 및 방법을 정하지 않아 결국 조례로 정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직은 잠실 주공 5단지의 안전진단 신청이 제기되지 않은 상태”라며 “구청에서도 이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ㆍ21대책으로 절차 간소해져

 
재건축 사업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06년 8월, 재건축 안전진단 판정 기준이 강화되면서 사실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단지들이 늘어났다. 대표적인 곳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 등이다.
이에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현 정부 들어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움직임에 편승해 마침내 안전진단에 대한 규제 역시 완화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8월 정부가 내놓은 ‘8ㆍ21’ 부동산 대책이 바로 그것이다. 8ㆍ21대책으로 인해 안전진단 단계에서 번번이 좌절됐던 이들 아파트 단지들이 최대 수혜주로 부상했다.
우선 예비안전진단과 정밀안전진단 2단계로 나눠져 있는 안전진단 절차가 하나로 통합됐다. 또 안전진단 실시 시기도 정비계획 수립 이후에서 정비계획 수립 이전에 받을 수 있도록 앞당겨졌다. 그리고 안전진단 심의 기준도 완화됐다. 이는 지난해 8월, 국토해양부가 “주거 환경과 노후 불량도 등 가점 요소를 적절히 조정해 재건축이 필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까다롭고 불합리한 심의 기준 때문에 재건축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조정할 계획”이라며 안전진단 심의 기준 역시 완화할 것임을 시사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의 산물이었다.
이에 따라 올 1월부터 재건축 추진 아파트의 안전진단 평가 시 항목별 가중치를 일부 조정한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개정안이 시행됐다.
개정안은 노후 재건축 아파트의 안전진단 시 구조안전성(아파트의 구조적 결함 유무와 얼마나 튼튼한 지를 보는 것) 항목의 가중치를 줄였다. 지금까지는 항목별 가중치가 ▲구조안전성 0.5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 0.3 ▲비용 분석 0.1 ▲주거환경 평가 0.1 등이었고, 56점 이상이면 ‘유지ㆍ보수’, 31~55점이면 ‘조건부 재건축’, 30점 이하일 때는 ‘재건축’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새 기준에 따르면, 구조안전성 가중치는 0.4로 낮아진 반면 비용 분석과 주거환경 평가의 가중치는 각각 0.15로 높아졌다. 구조안전성의 배점이 줄었다는 것은 구조안전성이 높은 아파트도 재건축이 수월해졌다는 뜻이다.


 
 
안전진단 신청 가능 연한 지자체마다 제각각
“법으로 통일” vs “시장 혼란ㆍ실효성 약화”

 
공동주택이 ‘재건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노후ㆍ불량 건축물로서 안전진단을 실시한 다음 ‘재건축’ 판정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노후ㆍ불량 건축물’의 범위는 도시정비법 시행령에 ‘준공 후 20년이 지난 건축물’로 제한돼 있고, 이를 또 다시 시ㆍ도 조례에 위임하고 있다.
이에 각 시ㆍ도는 저마다 조례를 통해 이를 달리 정해 놓고 있다. 때문에 지자체마다 안전진단 신청 가능 연한이 달라 일선 시장에서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과 그에 얽힌 형평성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돼 온 문제다. 일례로 서울시 등의 경우에는 노후ㆍ불량 건축물에 대한 범위를 최장 40년으로 정하고 있는 데 비해, 부산시 등은 법 그대로 20년을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재건축 사업의 안전진단 신청 가능 연한을 관계 법령에서 정한 ‘20년’으로 못 박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신상진 의원(한나라당) 등이 이와 관련하여 입법ㆍ발의를 한 적이 있고, 노원구의회 역시 지난 4월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위한 조례 개정을 서울시에 촉구한 바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주택 시장 혼란 야기 ▲사회적 자원 낭비 ▲안전진단 제도의 실효성 약화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안전진단 신청 가능 연한을 상위 법령에 따라 ‘20년’으로 못 박는다면 재건축 주택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주택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면서 “간단한 보수만으로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주택의 경우에도 해당 건축물의 안전성 등을 무시한 채 재건축을 추진하게 돼 자원을 낭비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안전진단’ 자체에 대한 실효성에 커다란 흠집을 낼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 용어 정리
 
ㆍ안전진단
: 공동주택 재건축 사업에 한해 재건축이 가능한지 여부를 놓고 관할 지자체 시장 및 군수 등이 판단해 실시하는 것.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2조 등에 규정돼 있으며 현 정부 들어 완화된 규제 등으로 인해 그 절차가 간소화됐다. 그로 인해 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데 비해 그 비용 부담을 놓고 지역 주민과 해당 지자체 간 갈등이 커지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ㆍ조건부 재건축
: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에 따르면, 노후ㆍ불량 건축물에 해당해 재건축이 가능하나 붕괴 등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은 없는 것으로써, 시장ㆍ군수 등이 주택 시장 및 지역 여건 등을 고려해 재건축 시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