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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총회’는 재개발ㆍ재건축사업의 모든 것: 2009.11.19 16:07 입력 | 2009.11.19 22:09 수정

‘총회’는 재개발ㆍ재건축사업의 모든 것
갖가지 이유로 무산돼…주민 부담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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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현장1(위 사진은 본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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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현장2(위 사진은 본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오늘 이 총회(總會)는 수십억 원짜리다. 조합원들께서는 이 점을 감안해 상정된 안건에 대해 신중히 판단한 뒤 반드시 여기서 결정해야 한다”
착공을 눈앞에 둔 어느 조합 임시총회에서 한 조합원이 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이나 조합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에서 총회를 소집하는 데에는 관계 법령 및 규정 등에 따라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개월이 소요된다.
오랜 준비 기간과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여 개최한 총회가 성원 미달로 무산되거나 상정 안건이 부결될 경우에는 다시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 하지만 하자 치유를 위해 한 번 무산된 총회를 재소집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게 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해당 추진위ㆍ조합(원)에게 귀속된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격언이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개발 이익 극대화의 제1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사업 기간 단축이다. 그러한 사업 단축을 위해 필요한 절차가 바로 총회다. 그러나 일선의 조합ㆍ추진위가 처해 있는 실상을 이와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선 재개발ㆍ재건축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총회 개최를 막거나 진행을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 일이 잦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7년,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의 한 재개발 사업장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당시 해당 지역 주민들은 재개발 반대와 조합장 퇴진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 해당 조합의 총회 개최를 번번이 무산시켰다. 전후 사정을 차지하더라도 당시 해당 조합이 총회 무산으로 입은 피해는 수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관할 구청의 인가를 받은 조합이나 추진위에 대해 그 반대파(속칭 비대위)가 조합ㆍ추진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임시총회를 개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 일부 비대위는 편법을 사용하거나 불법을 자행해 마치 자신들이 개최한 총회가 적법성을 지닌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서면결의서 위ㆍ변조 등을 통해 총회 참가자의 수를 부풀리거나 줄이는 행위 등이다. 실제로 서울시 강서구의 한 재건축 사업장에서 만난 조합 관계자는 “비대위 측이 총회를 개최하면서 성원을 짜 맞추기 위해 우리 사업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총회에) 참석시켜 놓고 마치 성원을 채운 것처럼 꾸민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조합 측이 기존 집행부의 해임을 막기 위해 반대파가 주최하는 총회를 무산시키고자 서면결의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곳도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의 한 재건축 사업장이 바로 그곳이다. 해당 조합의 전(前) 임원이었던 A씨는 “조합 집행부가 서면결의서를 제출하지도 않은 조합원이 마치 서면결의에 동의한 것처럼 조합 임의로 도장을 파 찍거나, 이미 죽은 사람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버젓이 명부에 올려놓기까지 했다”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이는 정비사업 전반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를 명시하지 않고 있는 관계 법령의 미흡한 부분, 서면결의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불법인 줄 알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이를 자행하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낮은 의식 수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러한 문제들이 오랫동안 관행처럼 행해진 부분이 없지 않다”면서 “이를 하루아침에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적절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특정 사업장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의 수천 개 정비사업장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지난 7월, 경기도 성남시 금광동의 한 재개발 사업장에서 열렸던 총회는 서면결의서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소동이 벌어졌고, 결국 상정 안건 통과에 필요한 의사ㆍ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총회가 무산됐다.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재개발 정비사업장에서도 현 추진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비업체와 짜고 수차례 총회 개최를 무산시키는 바람에 현재 조합 설립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 추진위 관계자는 “반대파의 방해로 이미 몇 차례 총회가 무산된 상태”라면서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주민들이 지쳐 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 사업은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실패로 끝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총회 무산에 따른 비용 놓고 분쟁 늘어

 
한편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된 총회에 대해 그로 인해 발생한 비용 문제를 놓고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격화되는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재개발 정비사업장이 대표적인 예다. 이곳에서는 조합 측이 개최했던 총회에 대해 비대위 측이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비대위 측이 승소함에 따라 총회 효력이 정지됐다. 그러자 조합 측은 이를 치유하기 위한 임시총회를 소집했고, 이를 두고 일부 주민들이 “비슷한 안건을 놓고 총회가 2번이나 열려 조합원들의 손실이 커졌다”면서 조합과 비대위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의 한 사업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분쟁이 발생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조합 측이 시공사 선정을 위한 총회 개최를 예고하자, 비대위 측이 “조합이 징구한 동의서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법원이 이를 수용하면서 해당 총회는 열리지도 못했다. 이에 해당 조합 관계자는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총회였는데 개최를 코앞에 두고 무산돼 아쉽다”면서 “재판부의 어이없는 결정으로 사업마저 지연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에 따른 비용 부담도 모두 우리 조합원들이 지게 됐다”면서 “누가 이 손실을 책임지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총회, 주민 이해 돕고 사업 추진에 도움 돼
서면 결의 둘러싼 갈등ㆍ고비용 등은 문제

 
정비사업이 성공하려면 추진 과정에서 대안을 가진 건전한 비판과 반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비판과 반대는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업 추진을 위한 적절한 긴장감을 준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비공개적인 장소에서 행해질 경우, 해당 사업장을 선동과 흑색선전, 비방과 불법이 판치는 복마전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그러한 점을 최대한 방지하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총회의 중요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이 보다 원활히 진행되려면 총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책자나 동의서 등과 같은 서면을 통한 설명만으로는 사업 구역 내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면결의를 통한 총회 참석이 여론을 왜곡하고 주민들의 발언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해당 지역의 여론을 가장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총회(직접 참석 시)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총회 주최 측은 참가자에게 사업에 대한 보다 상세하고 명확한 설명을 할 수 있고, 참가자 역시 발언권을 보장받아 주최 측에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개발ㆍ재건축 등에 대한 주민 이해를 높이는 데 총회만큼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게다가 총회는 해당 사업 구역 내 주민들의 재산 증식에도 도움이 된다. 정비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총회로 꼽히는 것은 조합창립총회, 사업시행총회, 관리처분총회 등이다. 통상적으로 정비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이들 총회가 개최될 때마다 사업이 안고 있는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집값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총회 자체가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업 추진을 위해 이해관계자들을 한자리로 모으는 행위인 만큼 주최한 쪽과 참가한 쪽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먼저 주최 측은 주민 의견 수렴을 통해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발판으로 주민 신뢰를 얻는 동시에 총회 자체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축제의 장으로도 만들 수 있다. 참석한 주민들은 정비사업의 ‘주인’으로서 사업 진행에 필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자부심 등으로 인해 자신의 권익을 보호받을 수 있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그들은 ▲서면 결의를 통해 이미 대부분의 안건이 처리된 상태라 참석자가 들러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고, ▲총회에 직접 참석하더라도 실제로 발언권을 얻기가 쉽지 않으며, ▲OS 및 도우미, 진행ㆍ경호 요원 등의 인력이 과다하게 투입돼 불필요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 등을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 S씨는 “현행 방식대로 개최되는 총회는 분명 장단(長短)이 있다”면서 “그러한 점을 감안할 때 ‘총회’는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업계 관계자들이 뜻을 모아 차제에 서면 결의 제도의 문제와 더불어 총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총회는 살아 있는 정비사업 역사 교과서”

 
한편 전국적으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총회가 열리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총회’ 자체가 국내 정비사업의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 정통한 원로 인사 Y씨는 “우리나라 재개발ㆍ재건축의 역사는 길어야 한 세대가 채 되지 않는다”면서 “일천한 역사 탓에 그간의 정비사업 현황이라든지, 모습을 담은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 않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정비사업 역시 건설ㆍ건축사의 한 부분이고, 수많은 지역 주민들의 재산 증식에 기여해 온 중요 경제활동이자 산업”이라면서 “이러한 정비사업의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고, 이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전산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것의 시작이 바로 총회 관련 자료의 보존”이라고 역설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수많은 조합이 생성ㆍ소멸을 반복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해당 조합이 가지고 있던 총회 관련 자료들이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심지어 현재 운영 중인 대다수 조합들도 총회 관련 자료를 방치하거나, 설령 보관하고 있다고 해도 이를 정리해 두지 않아 사실상 ‘폐지’와 다름없는 상태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문에 응한 P로펌의 변호사 P씨는 “총회 자료 가운데 총회 당시를 촬영한 영상물이라든지, 소집을 위해 발행한 책자, 속기록, 회의록 등은 법률적으로도 유효한 증거가 될 수 있다”면서 “이를 소홀히 해서 반대파에게 덜미를 잡히거나, 이를 확보하지 못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패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총회와 관련된 자료는 반드시 적법한 절차와 보관 방법에 따라 보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총회 자료를 DB(데이터베이스)화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백업시스템(back-up system)을 갖추는 일도 필요할 것”이라면서 “이에 수반되는 인력과 시간 등으로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만큼 총회 자체 못지않게 총회 관련 자료의 중요성도 깨달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Y씨는 “총회 관련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서 비용이 수반되고, 일선 조합은 사업 청산 시 해산되기 때문에 해당 자료를 보존ㆍ보관할 장소 확보라든지 관리자 선정 등에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큰 틀에서 보면 관할 구청이나 정부가 나서서 이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며 관계 당국의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