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뉴스! 정확한 정보! 도시재생신문 :: 골칫거리 상가 뺀 ‘아파트만 재건축’단지 는다

골칫거리 상가 뺀 ‘아파트만 재건축’단지 는다: 2010.04.09 15:01 입력 | 2010.04.09 22:34 수정

발목잡기에 소송 ‘맞불’…사업 돌파구 마련
협상카드 바닥난 사업장 줄소송 예고

 
“우리 구역은 조합 설립 전에 상가 문제를 해결해 향후 갈등 소지를 없앤 기념비적인 재건축 사례로 남을 것이다”
 
지난달 열린 서울시 강동구의 한 조합창립총회에서 추진위원장 J씨가 한 말이다. 당시 사회자 역시 “제가 재개발ㆍ재건축 업계에 오랫동안 몸을 담아 왔지만 이곳처럼 조합창립총회 전에 상가 문제를 해결한 곳은 처음 본다”며 추진위의 노력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곳도 현재 상가 2곳 중 한 곳만 협의를 마쳤고 아직 다른 한 곳과는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서 그나마 이곳처럼 협상 중인 곳도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로부터 그나마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사업장도 여전히 ‘상가’라는 ‘뇌관’을 안고 있는 셈.
 
일반적으로 재건축을 진행하는 데 있어 상가 문제는 일부 상가들이 조합을 상대로 지나치게 높은 ‘보상비’를 요구하면서 생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사업이 표류하면서 조합원들의 부담이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재 중 만난, 관리처분총회를 앞둔 강서구의 한 재건축 단지의 경우에는 가장 큰 난관이 뭐냐는 질문에 아예 대놓고 상가 문제를 꼽았다.
 
상황이 이러하자 아예 처음부터 상가를 제외한 채 재건축을 추진하려는 사업 구역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자신들이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으면 사업이 진행될 수 없다는 점을 노리고 한몫 챙기려는 일부 상가 소유주들의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생겨난 일.
 
해당 사업장들은 토지분할소송을 제기한 후, 소(訴)제기 증명 서류를 해당 관청에 제출하는 방법을 통해 조합설립인가 절차를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상가 부지를 제외하고 남은 아파트 토지 면적을 기준으로 조합 설립 동의 요건을 산정한다. 상가에 대한 동별 동의 요건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조합 설립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상반기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둔촌 주공아파트(1~4단지ㆍ5930가구)를 비롯해 인근의 고덕 주공6단지(880가구) 등이 최근 상가를 제외한 채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거듭된 협상 요구에도 상가 측이 무반응 혹은 무리한 요구로 일관하자 아예 상가를 빼고 재건축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해당 추진위는 조합설립인가 신청에 앞서 법원에 토지분할소송을 냈다.
 
한 조합 관계자는 “상가 소유자 2/3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재건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상가 측이 유리한 보상 조건을 이끌어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가를 놔두고 재건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 관계자는 “그동안 아파트 소유자의 경우에는 조합 설립 요건을 충족한 상태였지만 상가 측의 미동의로 조합 설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분할소송을 제기한 뒤 조합을 설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곳 외에도 재건축을 추진 중인 상당수 아파트 단지들이 상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강동구 고덕 주공2ㆍ3ㆍ5ㆍ6ㆍ7단지,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3주구) 등은 상가 소유주와 아파트 소유주 간 분쟁으로 떠들썩하다. 특히 송파구 잠실 주공2단지는 상가 조합과 아파트 조합이 양분돼 분쟁을 벌이는 와중에 시공사들이 공사비 미수금이 있다며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했는데 법원이 이를 수용하면서 개발 이익이 사라질 판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 단지들이 끝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상가 제척도 불사하지 않겠다고 밝힘에 따라 앞으로 토지분할소송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분할허용 판례ㆍ국토부 회신에 해당 구청 인가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상가를 제척(除斥)한 채 조합을 설립해 인가를 받는 것은 관계 법령이 규정한 ‘정비구역 및 토지의 분할’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34조 제1항은 ‘시장ㆍ군수는 정비사업의 효율적인 추진 또는 도시의 경관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정비구역을 2 이상의 구역으로 분할하거나 서로 떨어진 2 이상의 구역 또는 정비구역을 하나의 정비구역으로 지정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건축 사업의 범위에 관한 특례를 다루고 있는 제41조 제2항은 ‘사업시행자 또는 추진위는 토지분할청구를 하는 때에는 토지분할 대상이 되는 토지 및 그 위의 건축물과 관련된 토지등소유자와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3항에는 ‘사업시행자 또는 추진위는 토지분할 협의가 성립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법원에 토지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제4항은 ‘제3항의 규정에 의해 토지분할이 청구된 경우 시장ㆍ군수는 분할될 토지 및 그 위의 건축물이 다음 각 호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토지분할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수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당해 토지 및 건축물과 관련된 토지등소유자의 수가 전체의 1/10 이하일 것 ▲분할되는 토지 위의 건축물이 분할선상에 위치하지 아니할 것 ▲그밖에 사업시행인가를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요건에 해당할 것 등이 포함된다.
일각에서 도시정비법이 토지분할에 대해 명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상 등을 놓고 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사업이 지연되는 데다 향후 갈등 재연의 소지가 있는 상가를 굳이 함께 재건축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 S씨는 “과거 대다수 추진위들은 1심 판결이 나오는 데만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아 토지분할소송을 꺼렸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바뀌면서 관계 법령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인식이 확산돼 관련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동안 상가 문제로 속을 앓던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소송까진 가지 않더라도 사전에 상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곳저곳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재건축 청사진이 마련된 개포지구 내 몇몇 재건축 단지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기존 재건축 단지들의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본격적인 사업 추진 전에 상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민원을 우려해 토지분할 전 조합설립인가 및 사업시행인가 등을 내주는 데 인색했던 구청들의 태도도 유연해졌다. 지난해 4월 용산구 이촌동 렉스에 대해 관할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최초로 토지분할을 허가하는 판결을 내린 데 이어, 국토해양부가 “토지분할이 완료되기 전이라도 조합 설립을 허용하라”는 질의 회신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와 달리 상당수 재건축 추진위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토지분할(소송)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내에서만 강동구 고덕 주공6단지 둔촌 주공, 서초구 삼호가든 1ㆍ2차, 용산구 이촌동 렉스 등이 상가를 뺀 채 조합을 만들었다. 경기도에선 부천시 약대 주공, 안산시 군자 주공7단지, 인천시 신흥 안국아파트 등이 상가를 제외시켰다.
 

◆ 득(得)보다 실(失)이 많을 수도
여러 가지 이유로 과거와 달리 토지분할소송이 증가함에 따라 그것의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상가를 뺀 재건축은 상가 소유주의 지나친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선 득(得)보다 실(失)이 많을 수 있다. 우선 소송이 언제 마무리될지 기약할 수 없다. 상가 측이 일부러 소송 지연에 나서면 더욱 그렇다. 소송 과정에선 소송 당사자들에게 소송 사실을 알리는 ‘송달(送達)’이 필수다. 하지만 어느 일방이 고의로 법원 우편물을 수령하지 않을 경우 소송은 하염없이 지연될 수 있다.
 
맞대응에 나선 상가 소유주들이 추진위 혹은 조합 설립 과정의 하자를 트집 잡아 설립 무효소송을 낼 수도 있다. 실제 고덕 주공2단지와 3단지 상가 소유주 일부는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기 전에 추진위를 만든 것은 무효”라며 추진위 설립 무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밖에 대다수 업계 전문가들은 ▲상가 제척 시 구역 모양이 이상해지고 설계 변경 등으로 변경인가를 받아야 하는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돼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점 ▲토지분할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조합설립인가나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는데 추후 소송에서 시행자 측이 패소할 경우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 ▲상가를 제외한 뒤 사선 제한 등 건축 규제 때문에 개발 이익을 극대화할 용적률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했다.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에 상가부터 제척하는 데 대한 득실을 따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명확히 규정한 판례의 부재를 문제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토지분할의 주요 쟁점에 대해 이를 확정하는 판례가 없다. 이제 막 관련 소송이 발생하는 단계여서다. 법무법인 을지의 차흥권 대표변호사는 과거 인터뷰 때 올해 발생 가능한 업계 이슈를 꼽으면서 토지분할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최근 들어 불거지는 문제인 만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직 이와 관련된 사안이 대법원까지 간 사례가 없어 명확한 판례는 없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도 혼란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 토지분할 쟁점은?
업계 전문가들이 꼽는 토지분할 관련 쟁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개별 소유자의 위임 절차 없이 추진위가 소송 당사자(원고)가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하 차흥권 변호사는 “도시정비법이 주체를 명시하고 있는 만큼 규정대로 하면 당연히 (추진위도) 원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가람법률사무소의 김기원 변호사 역시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추진위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며 “다만 아파트 소유자 중 조합 설립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따라 다소 복잡해질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상가와 아파트에 설정된 근저당 등 소유권 이외의 권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문제다. 민법상 ‘공유물 분할’의 경우 공유물이 쪼개지더라도 기존에 있던 근저당 등에 대한 책임은 양쪽이 공동으로 떠안게 돼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된다. 차흥권 변호사는 “이 부분은 토지분할소송의 장애 요소”라며 “민법상으로는 아파트와 상가 양측으로 그 권리도 따라가게끔 돼 있지만 도시정비법에는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숙제’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도시정비법이 토지분할 전에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시행인가까지만 가능하도록 해둔 것도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에는 관리처분인가 등 그 이후 단계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차흥권 변호사는 “이 부분은 향후 입법 필요성이 있다”며 “토지분할이 조합 설립을 위한 장치인 만큼 알박기 방지 차원에서 보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반면 김기원 변호사는 “토지분할 조항을 만든 취지가 조합을 설립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 도입 취지를 생각하면 그 이후 단계는 고려할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新알박기 막을 근본 대책 필요
한편 소유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넘어 횡포로 이어지는 일부 상가 소유자들의 과도한 행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상가 문제가 일부 소유주들이 사업 진행을 담보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과도한 금액으로 매수 요구를 하는 등 신종 ‘알박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 일선 추진위 관계자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도 분명치 않고 또한 수시로 바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추진위 내부 회의를 통해 요구 조건을 수렴할 경우 다음 날 그보다 더 큰 요구를 하며 딴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추진위 관계자들이 언급하는 알박기 유형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으로 상가 매수를 강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추진위로부터 오는 연락을 모두 받지 않고 일부러 피하는 것이다. 추진위 처지에서는 상가 문제를 재건축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 추진위 관계자는 “사업시행자 측과 분쟁을 벌이는 상가 소유주 대부분은 현행 동의율 산정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동별 동의율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조합 설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사업 자체를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이로 인한 피해가 해당 재건축 사업에 참여한 토지등소유자 모두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 2003년 제정한 도시정비법에 토지분할 관련 조항을 삽입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실제 사업을 추진 중인 추진위 관계자들은 동별 동의 요건을 악용한 상가 소유자의 횡포가 중요한 사업 지연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강동구의 한 추진위 관계자는 “과도한 금액으로 매수를 요구하는 등 상가 소유자들의 횡포가 갈수록 도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아파트 조합은) 민간 시행자로서 그 대응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며 관(官)의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 사업성 저하 우려 탓에 소송 취하ㆍ소송-설득 병행
일단 일선 조합들은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해 나가는 한편 상가 소유자들에 대한 동의서 징구 등은 계속해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소모적인 소송을 진행하는 것보다 상생하는 방안을 찾자는 것. 신축 상가 등에 대한 논의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충분히 조합 측과 협의해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겠다는 생각이다.
 
한 조합 관계자는 “토지분할소송이 진행 중이라 하더라도 상가 소유주들을 대상으로 사업 참여를 독려하는 설득 작업 등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토지분할이 이뤄지게 되면 사업성이 떨어져 아파트와 상가 소유자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강동구 고덕 주공3단지에서는 토지분할을 추진했다가 상가 소유자들과 합의안을 도출함으로써 동의율을 충족시켰다. 따라서 고덕 주공3단지는 지난 2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고 해당 토지분할소송은 취하됐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