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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업체 선정 대의원회의에 위임' 위법논란 거세다: 2010.04.09 22:09 입력 | 2010.04.25 23:10 수정

임해중 기자

‘추인의 법리’로 사실상 수의계약
조합원만 몰라…분란 소지 있어
 

재개발사업에 있어 시공사의 수주전 못지않게 현장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철거업체 선정이다. 업체의 수익을 포함한 철거용역 단가가 워낙에 높기도 하거니와 사업초기부터 이들과 얽힌 수많은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상 조합총회 의결사안인 철거업체 선정과 관련된 업무를 대의원회의에 위임하는 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거세다. 워낙에 시비거리가 많은 업체선정이다 보니, 아예 관리가 쉬운 대의원회의에 넘겨 선정하고 추후 총회에서 추인을 받는 편법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편법의 대표적인 사례
 
철거업체 선정은 조합설립이후 반드시 총회결의를 거쳐야하는 사안이다. 그러다보니 추진위원회 단계부터 철거업체가 난립해 영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거업체를 조합이 선정하기 때문에 이주책임이 모두 조합에 전가된다는 점도 문제다. 철거업체와 조합의 유착관계가 형성되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는 그 틈바구니에서 편법이 기승을 부리는 것.
 
조합입장에서는 사전에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철거업체를 선정해야 뒤탈이 없다. 하지만 조합과 철거업체가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하더라도 총회에서 경쟁 입찰을 통해 철거업체를 선정하게 되면 해당 철거업체가 반드시 선정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한 마디로 ‘미끼’는 실컷 뿌려놓고 ‘물고기’는 잡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기존 재개발사업 현장에서는 철거업체 선정이 ‘총회결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입찰을 해야 하고 선정을 해야 하는지 법과 운영규정에 정확하게 규정돼지 않았다는 점을 악용했다.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을 일단 대의원회의에 위임한 후 선정된 업체를 향후 추인의 총회를 통해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냄으로써 특정업체를 선정하는 편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 계양구에 소재한 ㅈ조합이 이런 식으로 철거업체를 선정하는 대표적인 현장이다. 지난 9월 시공사 선정총회에서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을 대의원회의에 위임한 후 이미 주민총회를 통해 추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끈끈한 관계’를 맺어오던 철거업체를 내정해 놓고 사실상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조합에서 자주 활용되는 ‘편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합이 철거업체를 직접 선정하기보다 형식적으로 시공사로부터 추천을 받고 대의원회의에 해당 업체의 선정 및 계약을 위임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우수하고 성실한 업체를 공정하게 선정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실상의 ‘수의계약’을 이끌기 위한 술수라고 입을 모았다. 
 

◆ 대의원회 위임 가능한가?
 
그렇다면 과연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을 대의원회에 위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이런 행위가 현행법상 ‘적법’한지 여부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법에서 철거업체 선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24조 3항에 따라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의 부담이 될 계약, 철거업자·시공자·설계자의 선정 및 변경’은 반드시 총회에서 결의해야 하는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동법 시행령 35조 에서는 법 24조에 해당하는 사항들은 대의원회가 대행할 수 없는 사항으로 명시돼 있고 이 사항들은 조합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의원회의 위임이 불가한 ‘총희결의’사안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다. 도시정비법에서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을 대의원회의에 위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사실상 위임자체가 불법 행위인 셈이다.
 
이에 대해 한가람법률사무소의 조창혁 변호사는 “도시정비법에 따라 대의원회의에 철거업자 선정 및 계약을 위임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무효다”라며 “대부분의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의 소지가 없다”고 전했다.
 
조합집행부와 대의원 몇 명만이 철거업체를 마음대로 선정하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는 것이 조 변호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조 변호사는 문제는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일단 주민총회를 통해 추인의 결의를 획득하게만 되면 선정된 업체와의 계약이 민사상으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널리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 ‘추인의 법리’ 법적 효력 결정
 
일선 조합에서 악용하는 법의 허점은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을 대의원회의에 위임하는 것이 명백한 위법행위 임에도 불구하고 주민총회로 추인의 결의를 거치게 되면 선정 및 계약이 법적효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조 변호사는 “편법이라고 하는 이유는 위법하지만 어떤 절차를 거치느냐에 따라 법적 효력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주민총회를 통해 추인의 결의를 득하게 되면 ‘추인의 법리’에 의해 법률적 효력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즉 이미 내정된 철거업체를 주민총회에서 주민의 동의를 구하게 되면 이 사안은 ‘총회결의’를 획득한 것으로 보아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도시정비법이 개정되기 전에 시공사선정을 대의원회의에 위임해 주민총회를 통해 추인결의를 획득했을 경우 법원은 하자가 치유된 것으로 보고 계약의 법적 효력을 인정한 바 있어 철거업체선정 또한 이런 ‘추인의 법리’가 적용되게 된다. 
 
이어 조 변호사는 “결국 추인을 위한 주민총회를 거쳤는지 거치지 않았는지가 법적 효력을 결정한다”면서 “만약 주민총회를 통해 추인을 받지 못했다면 민사상 총회결의무효에 해당할 만큼 명백한 하자이기 때문에 철거업체업무중지가처분신청 및 형사상 도시정비법위반으로 어떤 법률적 효력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법률적인 쟁점들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편법에 의해 선정된 철거업체가 추인의 총회를 거치게 되면 사실상 법적효력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즉 계약 자체를 무효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K씨는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을 대의원회의에 위임하는 것은 이견의 소지가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무효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라며 “결국 추인을 위한 주민총회가 무효인가 유효인가를 따지게 되는데 통상적으로 추인은 주민이 의사를 표현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사실상 계약의 법률적 효력을 무효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형사적으로 돈을 훔쳐서 제자리에 놔두었다고 죄가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도시정비법 벌칙85조 5항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아니하고 사업을 임의로 추진하는 조합의 임원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형사상 처벌을 받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 법률전문가들의 공론이었다. 
 
 



‘시공비에 철거비 포함’ 또 다른 편법
공공관리자제도와 방식은 유사
하지만 목적과 취지는 정반대
 

이 외에도 일선 현장에서는 철거비를 시공비에 포함시키는 방식을 사용해 철거업체를 선정하는 등 또 다른 방식으로 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있다.
 
인천에 위치한 ㅊ2조합의 경우에는 대의원회의에서 철거비를 시공비에 포함시키도록 하고 총회를 통해 안건이 통과되자 철거업체가 시공사측에 철거업체 지정을 위한 로비를 벌이며 문제가 커지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철거업체 선정 및 계약을 대의원회의에 위임하는 것보다 조합이 책임을 회피하기가 훨씬 더 쉽고 비리구조가 시공사․철거업체․조합 3자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철거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시공비에 철거비를 포함시켰던 ㅊ2조합의 사례와 공공관리자제도에서 시공사가 철거공사를 책임지는 것은 목적이나 취지도 다를 뿐만 아니라 적법·위법여부에서도 분명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ㅊ2조합의 경우에는 현행 도시정비법상 위법행위일 뿐만 아니라 시공사가 끌어들인 특정철거업체를 ‘밀어주기’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기 때문에 공공관리자제도와는 목적과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반면 공공관리자제도는 시공사가 엄격한 절차를 통해 선정됨은 물론 시공사의 자금력과 공신력을 기초로 철거를 시공사 책임 하에 진행되게 함으로써 철거업체선정을 둘러싼 비리커넥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는 점,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 정비업체의 L대표는 “올 4월 이후 철거업체를 선정하는 조합은 반드시 시공사가 철거책임을 져야하고 이는 적법하다”라며 “하지만 ㅊ2조합의 경우에는 시공사·조합·철거업체 삼자 간 커넥션이 형성되는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조합원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조합이 철거업체 선정을 두고 각종 편법행위를 통해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일이 잦아들다보니 공공관리자제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시공사에 철거 책임을 의무화하도록 한 도시정비법 개정 이후, 두 업체 간 유착관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감시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통해 공공관리자제도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조합․철거업체간 비리커넥션 사라지나?
 

그간 철거업체 선정을 두고 조합집행부와 업체 간 비리의혹이 멈추지 않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다른 협력업체들 보다 용역비 규모가 크고 조합집행부와 대의원회를 상대로 철거업체 간 사전 로비가 공공연하게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 ㅈ조합에서 생겨난 철거업체 비리사건이다. 조합장이 철거업체 선정과 관련해 뇌물을 수수하고 선정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으로 구속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계산동에 소재한 모 조합의 경우에는 철거업체 선정과 계약은 대의원회의에 위임할 수 없는 ‘비용부담’에 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대의원회에서 미리 철거업체를 선정해 계약 하도록 한 뒤 주민총회를 통해 추인을 받는 편법을 썼다. 이는 사실 상의 ‘수의계약’으로써 조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철거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대표적인 ‘편법’ 중의 하나.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모 조합 또한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철거업체 및 이주관리업체 선정 및 계약체결을 대의원회에 위임한 바 있다. 
법과 원칙을 교묘히 빠져나가며 총회에서 공정하게 철거업체를 선정하는 것보다 이런 편법을 활용해 소위 뒤를 봐주는 철거업체를 더 수월하게 선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게 될 도시정비법에서는 철거공사와 관련된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고 이권을 둘러싼 내부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시공사에게 철거공사를 포함해 계약하도록 의무화하기도 했다. 
 
임해중 기자 lovecharlotte.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