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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가 민생 챙긴다며 간 곳이 '재개발 비리 백화점': 2009.10.19 10:47 입력 | 2009.10.22 17: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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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가 민생 챙긴다며 간 곳이 재개발 비리 백화점이라니 
 
지난 6일 저녁,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위원장이 그날 오후 서울시 성동구 옥수 제1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장(이하 옥수 12구역)을 찾아 이해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는 것이 바로 그것. 
그 순간 ‘이 위원장의 이번 행보가 친(親)서민’을 정책 기조로 삼아 모처럼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악재가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이러한 생각은 일종의 ‘데자부(Deja Vu)’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왕의 남자’로 불리며 현 정권의 핵심 실세로 꼽히는 인물이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부인한다. 얼마 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정권의 2인자’라는 세평에 대해 “나는 20위권에도 못 들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에게 붙은 2인자 꼬리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래서일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의욕을 앞세웠던 이 위원장이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낙마했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그의 낙마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 것이 ‘2인자에 대한 거부감’이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러한 꼬리표가 이 위원장에게 일종의 ‘낙인’이 돼 버린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이재오 권익위원장, 옥수 12구역 방문 
본보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한 곳 
 
이 위원장은 취임 이후 ‘1일 1현장 방문’을 기치로 내걸고 10여 곳의 민생 현장을 방문하는 등 열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진정성이 있느니 없느니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 왜 하필 ‘옥수 12구역’이란 말인가. 
기자는 본보 2호(2009년 9월 16일자 6~7면)와 3호(2009년 10월 7일자 4면)에 걸쳐 옥수 12구역에서 일어났던 비리 사건에 대해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사건을 용약하면 이렇다. 옥수 12구역의 조합장 방 모 씨와 총무이사 김 모 씨 등은 조합원 지분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시공사로부터 70억 원의 돈을 빌렸다. 하지만 이들은 이 돈으로 사들인 자산을 조합 명의로 하지 않고 유현컨설팅이란 특수목적회사의 것으로 돌렸다. 이 회사의 경영진은 대부분 조합 집행부와 친ㆍ인척 관계에 있는 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를 안 일부 조합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본 사건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해결이 요원한 상태다. 
위 사안만 놓고 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부동산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에 저촉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합 집행부의 방만한 예산집행과 국공유지불하대금 490억 원의 처리 문제, 나대지에 이주비가 지급됐다는 의혹, 방 조합장의 구의원 선거 자금으로 조합의 돈이 쓰였다는 의혹 등이 연이어 쏟아진 것. 이에 본보는 옥수 12구역이 재개발 비리의 백화점으로 보인다며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 왔다. 
덧붙여 이렇게 문제가 켜켜이 쌓인 비리 현장에 대한 수사가 검찰로 송치된 뒤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로비(?)를 통해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것 아닌가’란 일부 조합원들의 의혹을 전하기도 했다. 
 
 
측근은 몰랐나? 알았다면 ‘안티’ 
몰랐어도 보다 신중히 살폈어야 
 
이렇듯 옥수 12구역은 여느 정비사업장과 달리 관행 명백한 비리의 온상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본보는 본 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통해 해당 조합원들의 억울한 사정을 개선하고자 하는 바람을 안고 지난 2달여 동안 수만 부의 신문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를 독자들에게 알렸다. 
때문에 본보가 창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문이라고 해도 어떤 식으로든지 옥수 12구역에 대한 소문이 이 위원장 측근들에게 전달됐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만약 이 위원장의 측근 가운데 이 사실을 알고도 위원장을 이곳으로 이끌었던 자가 있다면 그는 이 위원장의 측근이 아닌 ‘안티(Anti)’일 것이다. 아니, 19개월 만에 ‘현역’으로 복귀한 이 위원장을 망치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그럴 수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이 위원장이 옥수 12구역에 감춰졌던 비리 사실을 알고도 이곳을 민생 돌보기의 최전선으로 선택했다곤 믿고 싶지 않다. 그가 이곳을 방문하게 된 이유를 묻자 권익위 관계자는 “(권익위에) 재개발과 관련한 민원이 많이 접수돼 현장의 생생한 얘기를 듣고자 (이 위원장이) 직접 (해당) 재개발정비사업장을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일 있었던 국회정무위원회의 권익위 국정감사(국감)는 ‘이재오 청문회’를 방불케 할 만큼 이 위원장에 대해 따가운 비판이 쏟아졌다. 이는 애초 기자가 이 글을 쓸 때(지난 13일) 어느 정도 예상됐던 터라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13일 당시 기자는 19일에 있을 국감이 이 위원장에게는 호된 신고식이 될 것이라 예상하면서 ‘국감에서 옥수 12구역과 연관된 얘기가 나올 경우, 오랜만에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 위원장에겐 불리한 기제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다행히(?) 국감장에서는 기자의 우려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이 위원장은 ‘최근의 활동이 언론의 주목을 끄는 현장 방문에 집중돼 있는 등 정치적인 행보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야당 의원들의 집중 포화를 감내해야만 했다. 
 
 
‘신뢰’ 강조…MB의 ‘사회적 자본’과 일맥상통 
누가 뭐래도 ‘왕의 남자’…헤쳐 나가야 
국민이 원하는 건 그의 함박웃음 
 
하지만 이 역시 그가 헤쳐 나가야 할 하나의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그가 아무리 부인한다고 해도 세상은 여전히 그를 ‘왕의 남자’로 보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발걸음은 다른 이보다 진중해야 한다. 움직일 땐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그 전에 미리 살필 것은 세세한 것까지 다 살피고, 만의 하나라도 미심쩍은 것이 있다면 그곳에 한 번 더 눈길을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왕의 남자’로서 그가 걸어야 할 숙명이다. 
이 위원장은 권익위 홈페이지를 통해 “깨끗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선도자로서 청렴 문화 확산과 신뢰 사회 정착에 힘쓰겠다”며 의지를 피력했다. 또 6일 옥수 12구역을 방문한 자리에선 “상호간에 신뢰를 쌓아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취임 이후 2주 동안 수많은 현장 방문 와중에 ‘신뢰’를 누차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위원장 자신이 먼저 국민들에게 ‘신뢰’를 보여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자기 자신부터 소위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건 아닌지, 또 그들이 이 위원장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이 위원장 스스로 1년 6개월의 야인 생활로 자신의 과오가 무마됐다고 생각했다면 이미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다. 그를 진정으로 아끼는 국민들은 그가 19개월 만에 장관급 인사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야인으로 있었던 기간 동안 얼마만큼 자성하고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지, 또 그것을 이번 기회에 어떻게 살릴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왕의 남자’가 잘 돼야 ‘왕’도 잘될 게 아닌가. 또 그 ‘왕’이 잘돼야 ‘나라’도 잘될 게 아닌가. 그래야 이 위원장의 미니홈피에 적혀 있는 ‘정의’, ‘공평’, ‘긍정’이란 세 글자가 현 정부 집권 5년이 남긴 업적의 맨 앞자리에 있을 게 아닌가. 
이러한 가치들은 모두 이 대통령이 집권 후 강조하고 있는 ‘사회적 자본’과도 연관이 깊은 것들이다. 또한 이러한 가치들이 제대로 정립돼야 국격(國格)도 높아지는 것이다. 짧은 임기 동안 국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면 현 정부는 성공한 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또 그 바탕을 이 위원장이 닦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과오를 씻는 것을 뛰어넘어 국민에게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국민들은 이 위원장이 실수를 되풀이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의 함박웃음이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