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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ㆍ재건축은 비리 복마전…서울 송파구 잠실 등 8곳, 수십 명 얽혀: 2009.12.02 10:08 입력 | 2012.01.28 12:58 수정

재개발ㆍ재건축은 비리 복마전인가?
송파구 잠실 4곳 포함 총 8곳
관련자 수십 명…총체적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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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으로 새롭게 거듭난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위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하 서울동부지검) 형사 제6부(부장 이중희)는 잠실 시영아파트(현 잠실 파크리오)와 거여, 잠실주공 1~3단지, 강동구 고덕ㆍ가락, 경기도 성남 단대지구 등 총 8곳의 재개발ㆍ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서 28억 원가량의 뒷돈이 오간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번 비리 사건에 연루됐다고 의심되는 혐의자 32명 가운데 9명은 구속 기소, 21명은 불구속 기소, 2명은 지명수배 했다고 지난달 15일 밝혔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조합 임원, 고문변호사, 조합 비리를 수사했던 전ㆍ현직 경찰, 조합설립인가를 맡은 구청 공무원, 시공사로 선정된 대형 건설사 간부 등으로 송파구 잠실만 하더라도 2만 500여 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선 대규모 단지를 총괄했던 4개의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장이 모두 연루돼 있어 비리 역시 총체적이었다.
이번 비리 적발은 지난 9월 서울동부지검의 잠실 주공2단지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장과 전직 경찰관이 체포되면서 표면화했다. 당시 전직 경찰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공무원 비리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관측되기도 했다. 이후 검찰은 서울 송파구를 포함, 수도권 8개 재개발ㆍ재건축 단지로 수사를 확대했고, 구청 공무원이 재건축 조합 설립을 인가해 주는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 본격적으로 이번 사건을 파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권 바라는 업체 조합장 등 임원 공략
조합장에 권력 집중된 구조 개선해야

 
비리의 시작은 역시 정비사업의 주체이자 조합원들의 사업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조합 집행부였다. 특히 조합장은 영락없이 이권을 꿈꾸는 업체의 집중 타깃(target)이 됐고, 돈벼락을 맞게 된 조합장 등은 십중팔구 검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송파구 잠실 시영아파트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장 고 모 씨(61)는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차례에 걸쳐 모 창호업체 대표 김 모 씨(50ㆍ불구속 기소)로부터 500억 원 규모(6800여 가구)의 재건축 아파트 창호 공급업체로 선정해 준 대가로 6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고 씨가 김 씨로부터 받기로 한 돈은 총 30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조합의 감사인 조 모 씨(55ㆍ여)도 창호업체로부터 5000만 원을 받았고, 결국 김 씨는 공사권을 따냈다. 이들은 업체 선정 과정에서 거액의 돈을 주고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김 씨는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브로커 양 모 씨(38ㆍ불구속기소) 등을 이용해 고 씨를 비롯한 해당 조합 임원들에게 총 14억 5000만 원의 뇌물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잠실 주공2단지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장 이 모 씨(59)는 아파트 청소 등을 담당하는 관리업체 선정에도 관여해 업자로부터 3800만 원 수수하는 등 총 88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이번에 구속 기소된 조합장은 2명이 더 있다. 이번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비리의 정점에는 ‘조합장’이 존재한다. 이는 최근 수년간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의 이권이 커진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사업 추진에 있어 중요한 의사 결정 대부분을 조합장이 홀로 처리하는 구조에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합 비리의 가장 근원적 문제는 조합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데서 비롯된다”면서 “차제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세심한 권한 배분 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업체가 불법적으로 이권에 개입할 여지를 없애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 조합 관계자도 “조합장은 제왕적 권력과 결정권 갖고 있다”면서 “우리 임원이나 조합원들에게 무한 책임은 있어도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 역시 “현재 조합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조합장 출마 후보들이 수십억 원의 선거비용을 사용하고 당선 후 이를 보상받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구조가 만연해 있다”면서 “오죽하면 잠실의 한 재건축 단지에서 조합장 선거 낙선자가 선거비용으로 사용한 15억 원가량을 갚지 못해 부부가 동반 자살까지 했겠는가”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지역 인사 광범위하게 연루된 ‘부패 사슬’
경찰ㆍ공무원ㆍ대기업 간부ㆍ브로커…

 
이번에 적발된 비리 사건은 단순히 조합 집행부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 인사들도 결합된 전형적인 ‘부패 사슬’이 형성된 구조로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경찰 간부 김 모 씨(40ㆍ수서경찰서 지능팀장)는 자신이 조합장(잠실 주공2단지)을 구속시킨 후 이를 빌미로 후임 조합장인 이 모 씨와 친분을 쌓았다. 이 친분을 통해 스스로 브로커로 나선 김 씨는 재건축 단지 상가 매수와 관련해 업자로부터 1억 5000만 원을 받아 조합장에게 5000만 원, 조합 고문변호사 이 모 씨(42ㆍ불구속 기소)에게 6500만 원을 건넸고 3500만원은 자신이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비리의 사슬엔 대기업과 공무원도 끼어 있었다. D건설 이 모 부장(47)은 지난 2월 송파구 거여동 재개발 단지의 시공사로 선정된 뒤 용역업체 대표 정 모 씨(45)에게 2억 원을 받아내 그 돈을 조합 총무 김 모 씨(39)에게 건넸다. H건설 이 모 부장(45)은 지난해 9월부터 올 5월까지 강동구의 고덕 주공1단지 조합장 김 모 씨(52)에게 인테리어 무료 시공 등 3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줬다. 송파구청 지역개발과 공무원 김 모(53ㆍ6급)씨는 2008년 2월부터 올 1월까지 5차례에 걸쳐 거여 재개발 단지의 조합 설립을 인가해주는 대가로 정비업체로부터 1700만 원을 수수하고 수시로 향응을 제공 받았다.
 
 


전문 ‘꾼’ 활개…‘브로커 플루’ 대유행
브로커끼리 ‘다단계’ 방식 잘못된 공생

 
이번 수사 과정에서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 전문 ‘브로커’의 존재도 확인됐다. 이들은 ‘거미줄’ 형태의 구조를 갖춘 채 다수의 단지에 개입하며 현장 곳곳에서 돈 거래를 주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브로커 강 모 씨(38ㆍ불구속 기소)는 잠실 주공1~3단지, 성남시 단대지구 등 4곳에서 경비 용역ㆍ관리업체 선정에 관여해 2008년 1~8월 사이에 모두 5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다른 브로커 김 모 씨(42)는 잠실 주공2단지에서 조합장과 친분을 앞세워 정비ㆍ창호업체 선정 과정에서 2억 2000만 원을 수수했다.
검찰 조사 결과 조합 임원들은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기 위해 검은돈을 받을 때에는 반드시 친분이 있거나 비밀이 보장될 만한 이들을 통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자나 브로커가 조합 임원과 친분 있는 이들을 찾아 줄을 대려고 하다 보니 로비 커넥션은 자연스레 ‘다단계’ 방식으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됐다.
송파구 잠실 시영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경우 브로커 양 모 씨(43)가 하청 공사 수주를 원하는 업자들로부터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 총 4억 2000만 원을 받아 그 중 상당액을 다른 브로커 김 모 씨(38)에게 전달했고, 그 중 2억 원은 다시 다른 브로커 김 모 씨(57ㆍ인테리어 업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식으로 양 씨가 잠실 4개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협력 업체 선정을 위한 로비 명목으로 다른 브로커에게 건넨 돈은 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씨는 이를 모두 하청업체로부터 조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브로커 사이에서도 사업 단계별로 선이 닿는 브로커를 선별해 조합 관계자 등에게 전방위 로비를 펼친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중간 브로커들이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 간 돈을 제외하면 최종 로비 대상인 조합장 고 모 씨에게 건네진 돈은 고작(?) 1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동부지검의 한 검사는 “조합장이나 조합 임원들은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조합장과 친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2~3명의 브로커를 동원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면서 “아무개가 조합 집행부와 친하다고 소문나면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전부 브로커가 되기 때문에 브로커가 끊임없이 양산되고, 그에 비례해 비리 역시 끊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 역시 “조합장 등 조합의 핵심 임원과 친하면 누구든 브로커로 활용됐다”며 “실력 있는 브로커로 소문이 나면 인근 사업 현장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치 ‘신종플루’처럼 번져 나가는 ‘브로커 플루’ 현상이라 불러도 좋을 지경”이라고 개탄했다.
 
 


뒷돈 피해 입주민에 전가…조합원은 ‘봉’
조합 구조 개선 필요…공공 개입 요구

 
이런 비리 구조의 피해는 결국 조합원과 입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뒷돈이 오가면서 들어간 비용이 고스란히 최종 분양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실 주공2단지의 한 조합원은 “입주 가구당 수백만 원의 손실을 봤다”면서 “추가 비리가 없는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결국 극소수의 사람들이 사익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재산을 담보로 ‘돈놀이’를 했고, 그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의 부담을 전가시켰던 것이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조합원들만 한낱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이자 ‘봉’이었던 셈.
이에 따라 재개발ㆍ재건축 조합에 대한 본질적 구조 개선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 Y씨는 “대부분의 조합원은 먹고살기에 빠듯해 (정비사업에 관한) 모든 것을 조합에 위임할 수밖에 없다”면서 “최소 수백억 원에서 최대 수조 원에 이르는 사업이 자질 검증도 안 된 몇몇 조합 임원의 손에 좌우되는 현 구조에서는 조합 집행부가 비리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조 모 씨는 “시공사 선정 단계부터 재개발ㆍ재건축과 관련된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일괄적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공공의 개입을 강화함으로써 조합(집행부)의 개입 여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 시범 실시 중인 ‘공공관리자제도’를 하루빨리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조합장은 조합원들의 선거를 통해 뽑지만 선거 자체의 공정성이 의심될 정도”라며 “선출된 조합장은 측근들을 임원으로 임명해 전횡을 일삼는 경우가 많은 만큼 더 이상 민간에만 맡겨서는 이도 저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공공이 개입한다고 해서 오랫동안 관행처럼 고착화했던 현행 체제가 바뀌기 어려운 만큼 관민(官民)이 절충점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조합 임원들과 브로커 등이 챙긴 28억 원의 범죄 수익을 모두 추징 보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재개발ㆍ재건축 비리는 결국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져 피해가 고스란히 조합원과 일반분양자들에게 돌아가는 만큼 다른 사업장으로 수사를 확대해 고질적인 비리 관행을 끊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미 입주가 끝난 피해자들이 낸 부담금을 돌려받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