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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에도 ‘아이리스(IRIS)’ 있다: 2009.12.02 10:33 입력 | 2009.12.05 19:07 수정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에도 ‘아이리스(IRIS)’ 있다
무책임한 반대파ㆍ무기력한 직무대행ㆍ브로커 등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인 한반도.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국방위원장은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개최하려 한다. 양측의 최고 지도자를 보필하며 대테러ㆍ안보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인 남한의 국가안전국(NSS)과 북한의 호위부(DPK)는 최일선에서 이를 지원한다.
하지만 테러범들이 NSS 본부에 침투해 초정밀 원격 기폭 장치를 탈취하면서 남북한의 관계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이 장치와 농축 우라늄을 결합하면 테러범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핵폭탄을 터뜨릴 수 있다.
이 사건은 DPK의 수장이 서울에서 핵폭탄을 터뜨려 정상회담을 무산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정권 창출을 이루는 데 이용하기 위해 벌인 것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런데 테러범들의 위치를 파악한 NSS의 국장이 교란 작전을 펴 이들의 도주를 돕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DPK의 수장과 NSS의 국장이 한통속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아이리스(IRIS)’라 불리는 조직의 일원으로, 국가 혹은 정부, 군사ㆍ테러 조직 간 분쟁을 유발해 그 사이에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자신들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여기까지가 최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문득 이러한 ‘IRIS’가 재개발ㆍ재건축 현장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비사업은 조합과 협력업체의 긴밀한 협조와 신뢰 속에서 진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비사업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기 때문에 분쟁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사업장 내에서 심각한 분쟁이 일어나 문제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심에는 ‘IRIS’처럼 양자 사이에 껴서 사익을 채우며 사업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정비사업 자체를 반대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몇몇 주민, 사욕 때문에 조합 집행부를 와해시키려는 반대파, 조합과 업체 사이를 오가며 비리를 부추기는 브로커, 직무대행으로 파견돼 조합원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소수의 변호사 등이다.
실제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재개발 사업장에서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일부 주민들이 추진위를 흔들고 사업을 방해하고 있다. 동대문구의 한 재건축 사업장에서는 직무대행자로 선정된 변호사가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해, 해당 사업장을 그가 파견되기 전보다도 못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 수많은 정비사업장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전문 브로커들의 존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속칭 ‘비대위’가 사업을 잘 운영하던 조합을 뒤엎기 위해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아 가며 사업을 지연시키는 일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리 사건 취재 과정서 ‘IRIS’ 존재감 더 커져
현직 경찰ㆍ공무원 연루 ‘충격’…빙산의 일각

 
이러한 생각은 최근 불거진 재개발ㆍ재건축 비리 사건을 취재하면서 더욱 강렬해졌다. 잠실 일대 4군데 재건축 사업장을 포함해 총 8곳의 사업장은 지난 9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 잠실의 한 재건축 사업장에서 발생한 비리에 경찰이 연루됐다는 것을 포착한 뒤 수사를 확대하면서 단지 ‘찔러본’ 곳이었다. 애당초 표적 수사를 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진행된 8곳 모두에서 불법적인 돈거래가 있었다는 게 밝혀졌으니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받은 충격은 기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컸으리라.
이번 비리 사건에서 비리 혐의로 구속되거나 기소된 자들 가운데 특히 인상적이던 ‘IRIS’는 바로 관할 구청 공무원과 경찰이었다.
송파구청의 6급 공무원인 김 모 씨는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재개발 단지의 조합설립인가를 내주는 대가로 정비업체로부터 1700만 원을 수수하고 수시로 향응을 제공받았다.
수서경찰서의 간부 김 모 씨는 잠실의 한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장을 구속시켰다. 이를 계기로 후임 조합장과 친분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브로커로 나섰다. 김 씨는 재건축 단지 상가 매수와 관련해 업자로부터 1억 5000만 원을 받아 조합장에게 5000만 원, 조합 고문변호사에게 6500만 원을 건넸고 3500만 원은 자신이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나같이 어처구니가 없는 인사들이다. 한 명은 민중의 지팡이로서 위와 같은 비리를 들춰내야 하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한 명은 국민의 공복으로서 담당 업무에 대해서는 당연히 대가 없이 불편부당(不偏不黨)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번 비리 사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재개발ㆍ재건축 비리는 결국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져 피해가 고스란히 조합원과 입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만큼 타 사업장으로 수사를 확대해 고질적인 비리 관행을 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에서 드러난 비리 혐의자들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그들은 오히려 가려내기 쉬운 ‘IRIS’일 것이다. 문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를 이용해 더 악랄하게 사업을 방해하며 지역 주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IRIS’일 것이다.
 
 


조합원, ‘욕심’ 버리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스마트’한 조합원이 ‘IRIS’ 뿌리 캘 수 있어

 
드라마에서는 ‘IRIS’로부터 부모를 잃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주인공이 ‘IRIS’의 음모를 무산시키며 그 조직을 무너뜨릴 기대주로 예고되고 있다. 그는 원래 NSS 소속이었고, DPK에서도 활동했으며, 무엇보다 ‘IRIS’에 대해 그 실체를 파악해 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존재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아 가며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
이를 현실에 적용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정비사업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IRIS’를 사업 과정에서 배제하고 그들의 사욕 추구를 막을 사람이 결국 정비사업장에 있는 이해관계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특히 조합 집행부를 비롯한 해당 사업장의 조합원들이 그 중심에 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이 사업 전반에 대해 지금보다 더 큰 관심을 갖고 ‘IRIS’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정비사업장에서 조합원들의 권익을 갉아먹는 ‘IRIS’는 조합원보다 전문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대다수 조합원들에 비해 법률적으로, 또 행정적으로, 심지어 비리를 위한 꼼수를 부리는 데 있어서도 능한 경우가 많다.
그런 자들의 음모를 미연에 파악하고 그들이 마수를 뻗치더라도 그 손길을 단호히 뿌리치기 위해서는 우선 정비사업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 재산은 내가 지킨다’는 자세와 더불어 ‘나부터 재개발ㆍ재건축으로 한몫 잡겠다’는 허상을 버려야 한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스마트(smart)’한 조합원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얼마 전 만난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재건축 사업을 추진 중인 추진위원장 J씨는 “정비사업은 아는 만큼 성공한다”며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했고, 법률 전문가 Y씨는 “탐욕이 곧 탐욕을 부른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입증됐다”면서 “조합원부터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각 현장의 조합원들이 이 2가지 마음가짐부터 실천에 옮긴다면 해당 사업장에 ‘IRIS’가 발 디딜 틈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그것이 종국에는 ‘IRIS’의 뿌리를 캐내는 힘이 되리란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